덤벨 플라이로 가슴 운동하면서
‘파괴역학(Fracture Mechanics)’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재료 내에 존재하는 결함이 파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이 상처를 받는 것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료(Material)’도 상처를 받죠. 재료 내에 존재하는 결함이 바로 재료가 받는 상처인 셈입니다. 우리 인간이 무언가로 인해 물리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예방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처럼 금속이나 비금속을 대상으로 결함을 연구하는 학문이 파괴역학입니다.
재료에 결함이 생기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피로(fatigue)’에 의한 결함입니다. 피로는 재료가 주기적인 하중을 받을 때, 작은 강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균열이 발생하고, 그 균열이 진전하여 결국 파괴에 이르는 현상입니다. 고무줄을 늘였다가 줄였다가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고무줄이 끊어지죠. 그것이 바로 수축과 인장이 반복되어 파괴에 이르는 피로파괴입니다.
근육을 키우는 운동에서는 ‘선피로(Pre-exhaus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특정 근육을 운동할 때, 고립 운동으로 먼저 피로시키고, 이후 복합 운동으로 더욱 큰 자극을 줍니다. 고립 운동은 가벼운 중량으로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기 때문에 목표 근육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근섬유에 손상을 주워 목표 근육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근육 성장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가슴 운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벤치 프레스를 수행하기 전에 덤벨 플라이로 가슴에 선피로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벤치에 누운 다음, 가벼운 덤벨을 든 두 팔을 옆으로 벌렸다가 모았다 벌렸다가 모았다가를 반복합니다. 팔을 옆으로 벌렸을 때에 가슴 근육은 이완되고, 팔을 다시 모았을 때에 가슴 근육은 수축됩니다.
앞서 파괴역학 측면에서 피로 파괴가 발생하는 원리를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죠. 이때 팔을 모으는 것보다는 팔을 벌렸을 때, 가슴 근육이 쭉 이완되면서 근섬유에 많은 손상이 발생합니다. 저 역시 덤벨 플라이를 할 때는 이완 동작에 좀 더 신경을 씁니다. 꼭 덤벨 플라이가 아니라 체스트 플라이도 같은 원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어차피 무거운 중량으로 벤치 프레스를 할 건데, 굳이 그 이전에 가벼운 중량으로 덤벨 플라이를 할 필요가 있나? 선피로로 그 작은 상처를 내는 게 큰 의미가 있나?
종이에 손가락이 베이면 모든 신경이 손끝으로 향합니다. 발바닥에 가시가 찔려도 모든 신경이 발바닥으로 향합니다. 아주 작은 상처지만, 상처가 생긴 것만으로도 모든 신경이 한곳에 집중됩니다. 물리적인 상처뿐만이 아니라 마음에 작은 상처가 생겨도 다른 일에 집중하기 힘들죠. 모든 신경이 상처 끝에 쏠리기 때문입니다.
이때, 다시 파괴역학 개념 중 하나인 ‘응력 집중(Stress Intensity)’가 등장합니다. 간단합니다. 균열이 발생한 재료에서는 균열 끝단(crack tip) 부근에 응력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피로에 의해 응력이 균열 끝단에 집중하니 균열이 점진적으로 성장하겠죠. 그러다 보면 결국 파괴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손이 베이거나 가시에 찔리면 상처 끝에 응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온 신경이 그쪽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복된 고립 운동으로 목표 근육에 선피로를 주는 이유도 어떻게든 근섬유에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작은 균열이라도 그 균열이 생기기만 하면, 균열 끝단에 응력이 집중됩니다. 그러면 복합 운동을 하더라도 균열이 생긴 특정 근육에 좀 더 자극이 잘 전달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근섬유의 손상이 더욱 촉진되겠죠. 그렇게 손상된 근섬유는 단백질 합성을 통해 복구되면서 점진적으로 근육이 성장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때 이 말이 청춘들에게 뭇매를 맞았던 적이 있습니다. 고통을 미화하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전가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헬스에서 만큼은 아파야 합니다. 덤벨 플라이로 예를 들기는 했지만, 헬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동작은 어떻게든 근육에 상처를 주려는 행위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근육을 키우는 운동에서 만큼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고, 그 자체를 즐겨야 합니다. 아프니까 운동입니다.
덤벨 플라이를 하며
오늘도 딴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