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트 프레스로 가슴 운동하면서
세상 일이 참 내 뜻처럼 흘러가지 않습니다. 지금 맡은 업무만 마치고 칼퇴근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팀장님께서 부르시더니 다른 업무를 맡기고는 하십니다. 본의 아니게 야근 확정입니다. 놀이동산에 가서 청룡기차 타고, 바이킹 타고, 범퍼카를 타려고 했는데, 가는 곳마다 줄이 길어도 너무 깁니다. 본의 아니게 귀신의 집 당첨입니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면 좋은데 매번 변수가 등장하기 마련이죠.
헬스장에서 PT를 받으면 트레이너가 회원에게 맞는 운동 순서를 정해줍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 해봐도 운동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하는 운동 순서가 있습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운동을 해온 분들은 본인 스스로 이렇게도 운동해보고 저렇게도 운동해보면서 자신에게 제일 잘 맞는 운동 순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루는 하체 운동, 다음 날은 등 운동, 그 다음 날은 가슴 운동을 하는 식입니다. 가슴 운동을 하는 날이라면 벤치 프레스하고, 인클라인 덤벨 프레스하고, 덤벨 플라이하고, 딥스를 진행하는 식입니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만 뛰다가 집에 갈게 아니라 여러 가지 운동을 할 목적이라면 나름의 운동 순서를 정해야 합니다. 미리 구상해놓은 단계별로 운동을 진행하다보면 성취감도 높아지고, 운동 효율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계획된 순서대로 운동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만약 당신이 드웨인 존슨(Dwayne Johnson)처럼 어마어마한 부자라면 “철의 낙원(Iron Paradise)”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이동식 개인 체육관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내 루틴에 따라 계획대로 운동할 수 있겠죠. 아마 운동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공간일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용하는 헬스장에는 운동기구는 한정되어 있으나 운동기구를 사용하려는 인원수는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하체 운동을 하겠노라 마음먹고 헬스장에 갔는데, 그곳에 있는 모두가 하체 운동을 하고 있는 날도 있습니다. 스쿼트하고 레그 프레스하고 레그 익스텐션을 하려고 했는데, 다른 분이 이미 사용하고 있다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가 없는 셈이죠. 그렇다고 무작정 운동기구 앞에서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린다고 한들 결국 내 시간만 뺏기는 꼴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은 『리더의 용기』라는 책을 통해 용기라는 능력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용기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취약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리더의 용기』에서 정의한 “취약성”이란 “불확실성의 위험과 감정에 노출된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정서”를 뜻합니다.
누군가 불확실성의 위험과 감정에 노출되면 우리는 흔히 “침착해”라는 말을 합니다. 우선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 다음을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의도죠. 그렇지 않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상황이 더 악화되기 마련입니다. 침착한 상태에 놓인다는 건 그 상황을 똑바로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취약성 인정하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가슴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갔습니다. 남자들은 참 가슴 운동을 좋아합니다. 밋밋한 가슴을 빵빵하게 만들기 위해 다들 열심히 운동하고 계십니다. 어떤 분은 벤치 프레스를 하고 계시고, 어떤 분은 스미스 머신에서 인클라인 벤치프레스를 하고 계십니다. 어떤 분은 케이블 머신으로, 어떤 분은 펙 덱 플라이 머신으로 열심히 안쪽 가슴에 펌핑을 주고 계십니다.
가슴 운동을 하려고 왔는데, 도무지 제가 사용할 머신이 안 보입니다. 제가 불확실성에 노출된 순간입니다. 이때 우리는 취약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슴 운동을 하려고 손목 보호대까지 착용했는데, 갑자기 하체 운동을 시작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침착하게 헬스장을 살핍니다. 그래야 길이 보입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체스트 프레스 머신은 비어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다니는 헬스장만 그런가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체스트 프레스 머신으로 운동할 바에는 차라리 벤치 프레스를 하거나 덤벨 프레스를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체스트 프레스 머신은 고정된 경로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자세를 잘못 잡으면 다른 근육이 개입하거나 어깨 관절에 부담이 가기 쉽습니다. 체스트 프레스 머신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다른 가슴 운동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운동이 체스트 프레스입니다.
계획에 없던 다른 변수가 나타나도 분명 대안은 있습니다. 용기는 본인이 인정하고 판단하고 사고하는 방식에 따라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은 체스트 프레스를 무시할지 몰라도 이가 아니면 잇몸이라고 계획에 없던 체스트 프레스로 그날 가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체스트 프레스를 하며
오늘도 딴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