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암덤벨로우로 등 운동하면서
테니스를 처음 배운 사람치고 손바닥에 물집 한 번 안 잡혀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딱딱한 테니스 라켓 손잡이를 쥐고 연신 공을 치다보면 손에 쥐고 있던 라켓이 조금씩 돌아갑니다. 그러다보면 라켓에 의해 손바닥이 조금씩 쓸리게 되고, 어김없이 물집이 잡히죠. 혹여 물집 잡힌 것도 모르고 계속 볼을 치다보면 물집이 터져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테니스 입문자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입니다.
물집이 잡혔다 터지는 힘든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던 손바닥에 딱딱한 굳은살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딱딱해진 피부를 보며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딱딱한 굳은살이 보기 싫어 손톱으로 뜯기도 하죠. 그렇다고 테니스 치기를 멈추지 않으니, 며칠이 지나면 다시 그 자리에 굳은살이 생깁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손에 생긴 굳은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덩달아 내 구력만큼이나 굳은살은 더욱 단단해진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동안 더운 날 뙤약볕 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볼을 쳤던 시간의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헬스도 비슷합니다. 헬스장에서 하체 운동, 가슴 운동, 등 운동, 어깨 운동, 팔 운동 등 다양한 신체 부위를 운동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바쁜 건 바로 손입니다. 하체 운동을 위해 바벨 스쿼트를 하려고 해도 손으로 바벨을 쥐어야 합니다. 가슴 운동을 위해 덤벨 프레스를 하려고 해도 손으로 덤벨을 쥐어야 합니다. 등 운동을 위해 랫풀다운을 하려고 해도 손으로 핸들을 쥐어야 합니다. 어깨 운동을 하던 팔 운동을 하던 손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죠.
우리가 손에 쥐는 바벨이나 덤벨, 핸들 및 기타 기구의 손잡이를 보면 표면에 일정한 패턴이나 돌기가 가공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방식의 표면처리를 널링(Knurling)이라고 합니다.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과 손잡이 사이의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임의로 가공한 표면처리입니다. 우리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며 바로 이 널링이 된 부분을 손으로 강하게 움켜쥐며 땀을 흘립니다.
아무래도 널링된 부분이 거칠다보니 이 부분을 오래 그리고 여러 번 쥐면 손에 굳은살이 생깁니다. 아무리 운동해도 생각보다 광배근은 잘 발달되지 않고, 대흉근은 잘 커지지 않지만, 생각보다 굳은살은 금방 생깁니다. 내가 오늘 잡고, 당기고, 밀고, 버틴 만큼 굳은살은 딱딱해집니다.
오늘은 등 운동을 했습니다. 컨벤셔널 데드리프트, 랫풀다운, 시티드 로우 그리고 원암바벨로우를 하며 등 못지않게 손도 무척이나 고생했습니다. 어김없이 운동을 마치고 손바닥을 보니 살짝 부드러워졌던 굳은살이 다시 딱딱해졌습니다. 운동하는 내내 힘들었지만 그 모든 고통을 이겨냈음에 보람을 느낍니다.
카피라이터 정철은 『인생의 목적어』라는 책에서 ‘굳은살’은 그가 왜 프로인지 대답해 주는 신분증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프로라는 이름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살을 피가 통하지 않는 굳은살로 만든 대가로 주어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굳은살은 박수나 환호나 성공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결핍과 한계와 실패가 만들어주는 것이며,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내가 한 번 무너졌다는 생각이, 다시는, 다음엔, 더는, 같은 단어를 꾹꾹 눌러 굳은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 말합니다.
손바닥에 생긴 굳은살은 단순한 피부의 변형이 아닙니다. 단단함의 상징인 동시에 고통을 받아들인 증거입니다. 작고 거친 굳은살은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아픔의 순간도, 다시 일어나 도전했던 순간도 모두 여기에 새겨져 있습니다. 굳은살을 떠올리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말랑말랑한 살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굳은살은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 무게를 견디며 살아온 나 자신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굳은살처럼 말이죠.
원암덤벨로우를 하며
오늘도 딴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