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젠가는 슬기로울 엄마생활

by 김윤담

딸이 조금 크다 보니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즐겁다. 그중 하나가 함께 '드라마 보기'. 요즘 넷플릭스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을 함께 보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새내기 의사들의 에피소드를 아이도 즐겁게 따라 보는 중이다.


회차마다 여러 명의 산모가 등장하고,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우리 둘 모두 집중하며 보는데, 나는 출산의 경험이 생생하게 떠올라 그렇고, 아이는 모든 장면이 생경해서다.

부푼 배를 안고 기대에 찬 산모의 모습, 아기를 잃거나 혹은 잃을까 봐 우는 산모들을 보며 딸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던 차에 진통을 겪으며 진땀 흘리는 등장인물을 보면서 아이는 말한다.

"난 그냥 엄마 안 할 거야. 섹스도 안 할래."


이런 상상을 한 건 아니었는데.. 역시 초등학교 2학년 짜리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고통이 그저 끔찍하게만 보였으리라. 많은 엄마들은 그 통증을 기꺼이 감수하며, 선택하고 그 과정으로 인해 너와 같은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걸... 아이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꼬마가 그 복잡하고 선한 결론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딸의 천진함이, 아직은 자신 위주로만 생각하는 철없음이 지금 나이와 퍽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엄마의 통증이 아이의 죄책감이 되어선 안된다.

따지고 보면 아이를 위해서 산고를 겪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를 닮은 아이가 보고 싶어서 견딘 통증이었다.

어쩌면 우주의 먼지로 살아도 좋았을 아이를 세상에 불러낸 거다.

그렇게 딸을 이 세상으로 데려와 굳이 먹이고, 재우고, 입힌 다음 한글을 알파벳을 가르치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중이란 걸.. 네가 나중에 깨달으면 나를 미워할까?


그러니 엄마 경력이 길어질수록 엄마로 사는 일은 아무래도 밑지는 장사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과의 관계를 기브 앤 테이크로 생각하면 정말 그럴 거다. 하지만 여전히 처음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신비함과 벅찬 느낌, 감사함을 떠올리면 모든 것은 다 감내할 수 있다.

그리고 한 손으로도 들 수 있을 만큼 작았던 것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기쁨. 그것을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다.


너를 키우면서 아주 작은 것이 아주 큰 것임을, 그러므로 사소하게 자주 기뻐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으려 해. 드라마 속 산모들의 통증을 내 과거에 대입해 스스로를 연민하는 대신, 널 만나 다행이라고 감사하려 해.

네가 나의 마음을 몰라도 좋아. 내게 감동하지 않아도 좋아.

그냥 내가 너에게 매일 감동하는 것으로 행복하거든.


2025.5.19.

keyword
이전 22화착한 이는 지옥을 두려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