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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이는 지옥을 두려워해

by 김윤담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종종 식사시간에 아이와 영상을 보곤 하는데 요 며칠은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드라마를 함께 봤다.

노부부가 죽은 뒤 남편은 청년, 아내는 80대 노인의 모습으로 천국에서 만나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다. 지금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천국의 풍경이 흥미롭고 소소한 재미가 있어 아이와 함께 보기 시작했는데, 5화에서는 예상치 못한 지옥 풍경이 그려졌다.


주인공 해숙이 나쁜 일을 하면 받는 포도알 6개를 다 채워 지옥으로 끌려가면서 극의 분위기가 급 반전했다. 꽤나 생생하게 묘사된 지옥을 보고 난 아이는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내게 정말로 지옥이라는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지옥이 정말 있다면 난 안 죽을래"

"왜 너 지옥 같거 같아?"

"혹시 모르니까."

"네가 지옥 가면 세상사람 다 지옥 가겠다. 네가 얼마나 착하고 천사 같은데"

"치."

재미없다는 듯 삐죽거리면서도 내심 안도하는 눈치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여운이 깊었는지 아이는 오늘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말한다.

"발설지옥에서 혀 뽑는 거 너무 무서웠어."

"앞으로 누가 나쁜 말 하면 발설지옥에 가겠구나 생각하면 어때?"

"그런 생각하면 내가 지옥 갈 거 같은데"

"지옥 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아."


정말로 생각했다.

이토록 맑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네가 지옥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202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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