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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흔한 말

by 김윤담

-엄마도 나 사랑하지

-당연히 사랑하지

-엄마 그냥 불러

-응

-본거야

-왜?

-엄마 사랑해

-사랑해

-엄마

-응

-그냥 불러 본거야 엄마 엄마

-응

-나 사랑하지

-당연히 엄마도 사랑하지 엄청 많이 사랑하지 응 나도

-엄마 사랑해

-사랑해

-엄마

-응

-엄마 그냥 불러 본거야 엄마

-응, 나도

-사랑해

-사랑해

-엄마 끊어

-응 끊어. 얼른 와


오늘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중인 딸과의 통화 녹음 내용이다.

돌림노래 같은 이 대화를 우리는 매일 하교 때마다 나눈다. 오늘에서야 그 목소리를 녹음해 볼 생각을 했다. 아이폰 통화녹음 기능이 업데이트된 것을 알고도 써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만 수십 번 이 통화내용을 돌려 듣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이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난 그 문장의 진짜 의미와 온도를 몰랐던 것만 같다.

아이는 '사랑한다'라는 말이 듣고 싶을 때 먼저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나는 몰랐다. 사랑한다고 먼저 말하면 지는 것 같아서 부러 참은 날이 더 많았다.

연애 때도 반복해서 말하면 질려서 나를 떠나갈까 봐 늘 아끼고 아껴뒀다가 짧은 편지 끄트머리에 달곤 했던 말. '사랑해'

이 애는 참 당당하고 당돌하다.

상대가 지루해할까, 두려움도 없이 계속 말한다. 하고 싶은 만큼 듣고 싶은 만큼

알고 있는 거다. 자신의 통화상 대가 그 말을 지루해할 리 없다는 걸. 확신하는 거다.

아마도 아직 딸의 세상은 안전하고 폭신한 것 같다. 그 바탕엔 아마 내가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인 것 같다.

내가 그런 존재 일 수 있다는 것이 문득 벅차오른다.

사랑받아본 적 없어서 사랑 줄 수 없을 거라 믿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되어보고 싶었다. 내가 바랐던 '엄마'의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통화 녹음을 수십 번 다시 들으면서 내가 꿈꿨던 엄마의 목소리를 발견한다. 이 녹음 속에서 아이는 내가 되고, 나는 위로받는다. 치유된다.


202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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