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한 가운데 조각
날이 부쩍 더워져 올해 첫 수박을 샀다. 매년 수박 살 때마다 어느 것이 맛있는 건지 고르는 일은 매번 묘연하다. 배꼽이 작은 것이 달다던가, 꼭지가 휘어진 것이 맛있다던가 중얼중얼거리면 개중 실해 뵈는 놈으로 골라왔다. 딸은 집으로 돌아와 수박을 자르기 전부터 수박 수박 노래를 부르며 신이 났다.
야심 차게 수박 가운데에 칼집을 넣으니 경쾌하게 쩍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큰 힘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속살을 내어주다니 무척 달달할 듯한 예감이 들었다.
쇼츠를 보면 수박을 깔끔하고도 기발하게 써는 방법이 많아 늘 감탄하며 보다가 저장해 두곤 했는데, 역시 실전에서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커다란 수박을 반으로 가른 뒤 또 반으로, 그리고 석, 석, 석... 투박한 부채꼴 모양 조각을 쟁반에 옮겼다.
진한 수박향이 너무 향긋해 그만 식탁으로 몸을 옮기기도 전에 가장 잘 익은 가운데 조각을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1년 만에 다시 맛보는 이 수분충만한 달콤함, 절로 눈이 커졌다.
몰래(?) 수박을 먹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딸이 달려와 저도 입을 벌린다. 얼른 한 입 맛을 보여준다.
입안이 가득 찬 채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녀석, 너무도 쉽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식탁에 남편과 나 아이까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으로 씨를 하나하나 발라내는 딸에게 나는 그냥 꿀떡 삼켜도 된다고 잔소리를 하지만, 꼼꼼쟁이에겐 안 통할 말이다.
"네가 씨 발라내는 사이에 내가 다 먹어야지~" 얼른 또 잘 익은 가운데 한 조각을 집어 먹으며 내 머릿속에 수박씨처럼 박혀 있던 유년 시절 기억이 튀어나왔다.
어느 날엔가 나의 엄마는 부부싸움 후 수박을 썰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식칼로 수박을 난도질한 적이 있었다. 그때 흥분한 엄마와 싱크대 주변으로 튀던 빨간 과육 조각들.. 수박을 먹으려다 놀랐던 마음, 저 칼이 엄마의 몸을 상하게 하거나 혹은 내게로 가까워질까 두려웠던.. 그런 날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수박을 줄 때는 항상 가장자리 부분을 먹곤 했다. 동생이 얌체처럼 달콤한 부분만 먹고 수박껍데기 가까이 있는 빨간 과육을 잔뜩 남기면 엄마는 이렇게 먹으면 어쩌냐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때는 그것이 엄마의 사랑인 줄 알았다. 수박 가장자리를 먹는 것은 사랑이라 믿었다.
그러나 엄마가 된 오늘의 나는 가장 빨갛고 달콤한 한가운데 조각을 집어 들어 제일 먼저 내 입으로 가져간다. 이건 수박을 써는 자의 특권이다. 사랑은 수박 한 조각에 있지 않다. 달콤함 한 조각을 더 건네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내가 수박의 가장 맛있는 어느 부분을 먹는다고 해서 사랑이 모자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아이는 수박 써는 엄마의 모습을 난도질로 기억하지 않을 테니까. 쪼르르 달려와 입을 크게 벌리면 달콤한 것이 입으로 쑥 들어오는 촉감과 맛으로 기억할 테니까.
자신이 수박씨를 발라내는 동안 잽싸게 한 조각 더 먹는 엄마가 조금 얄밉기는 할 테지만..
아이 눈에 엄마가 가엽거나 무서운 존재로 읽히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을 테니까.
202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