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은 떨리는 발걸음으로 문을 연 정신건강의학과는 예상보다 밝고 쾌적했다.
대학병원에 입원 해 있을 때는 의사가 내 병실로 찾아왔기 때문에 정식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 꽤 긴장이 됐다.
혹여나 아는 이와 마주칠까 싶어 진료 첫 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이미 몇몇의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다.
구석진 화분 옆자리에 앉아 눈을 내리깔고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가 금방 내 이름이 불려 1 진료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떤 이유로 여길 오게 되셨을까요?"
흰 가운을 입고 앉은 의사는 사무적이지도,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은 적당한 농도로 내게 첫 질문을 던졌다.
뜬금없이 너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계기가 있었나요?"
"며칠 전에 남편하고 작은 트러블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은데, 어젯밤에는 자살충동이 너무 심하게 일어서 무서울 정도였어요."
"잘 오셨어요. 모든 환자들이 제 앞에 와 앉기까지가 가장 힘들어요. 여기 스스로 오셨다니 벌써 치료는 시작된 겁니다."
본격적으로 지난 주말 남편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면서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조금 울먹였다.
"수치스러웠을 것 같아요. 화장실에 오래 있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렇단 걸 아는데도 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거든요.
분명 그 사람도 화가 났을 텐데, 내게 좀 더 다가와 말 걸어주지 않는다는 게 불안했어요.
그래서 더 화가 났고요.
드디어 제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죽고 싶어 졌죠. 4살짜리 아이가 옆에 누워있었는데도요."
"남편하고 평소 관계는 어떤가요?"
"전혀 문제없어요. 제가 많이 의지하는 편이에요. 다만 그날은 3주 동안 출장에 갔다가 돌아온 첫 주말이라 제가 너무 설렜었나 봐요. 그래서 동시에 예민해진 것 같기도 해요."
"친정 식구와는 관계가 어떠세요?"
어쩌면 내가 가장 기다렸던 질문이 나왔다. 내 모든 문제의 시작, 꼬여버린 매듭을 풀기 위해선 '엄마'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엄마와 연락하지 않고 지내고 있어요."
평소 옛날의 기억들이 자꾸 떠올라 너무 슬프다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꼭 한 번씩 불쑥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내야만 하노라고, 과거의 나를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지금의 나뿐이라 외롭고, 답답하다고.
연신 크리넥스 티슈로 눈물을 훔치면서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과거 시나리오를 짧은 상담시간 안에 풀어내려 입 만은 바삐 움직였다.
그때 의사가 내 말을 끊고 물었다.
"잠깐만요. 지금 우울한 거예요? 서러운 거예요?"
"전 항상 서러워요."
훌쩍이면서도 동시에 실소가 터져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말았다.
핵심을 찌르는 의사의 질문에 당황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 기분은 늘 서럽고, 억울한 쪽에 가까웠다.
내가 얘기하는 내내 의사는 키보드로 무언가를 받아 적었고, 그 소리가 영 거슬리긴 했지만 의사가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는지 주시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환자분은 지금 '반추'때문에 힘드신 거예요. 이것도 우울증상 중 하나입니다. 자꾸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서 그때의 감정에 매몰되는 거죠. 우울증 약을 드신 적이 있다고 했죠? 약을 계속 드시는 게 좋겠어요. 처방을 드릴 테니 일주일 뒤에 다시 오세요."
아 그리고 숙제가 있어요.
지금 환자분의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요?
또 고리타분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머릿속을 굴려 엄마를 떠올려야 했다. 과거 내 기억 속의 엄마가 아니라 지금의 엄마를. 오늘도 하루만큼 더 늙어가고 있을 엄마를. 그래서 늘 나를 죄인으로 만드는 엄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