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은 게 많다. 취향에 딱 맞춰 척척 보여주는 광고 알고리즘의 소용돌이에 하루에도 여러 번 휘말린다.
미니멀라이프를 동경하지만 가능하다면 가장 내 취향이면서 고급인 것들로 주변을 채우고 싶다. 물론 현실에 맞지 않는 허영심이란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니까 싸고 질 좋은 옷을 입혀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멋스럽고 값이 비싼 옷에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하루라도 더 작고 어여쁜 딸의 시절을 인형놀이하듯 누리고 싶은 것도 솔직한 심경이다. 그리하여 가상의 장바구니는 오늘도 한가득이다.
외국 디자이너의 유명한 빈티지 가죽 소파와 테이블, 조명으로 공간을 채우고 싶다. 그러려면 로또에 당첨되거나 집이 좀 더 넓어져야 할 것 같다. 마음에 드는 로우라이즈 반바지와 하늘하늘한 면 소재의 스트라이프 민소매 티셔츠를 보면 입고 싶다. 그러려면 살을 족히 10kg 정도는 빼야 할 것 같다. 가마에 구워 손맛이 살아있는 그래서 식기세척기에 마구 돌릴 수 없는 도자기 그릇을 보면 갖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갖고 있는 그릇들을 싹 다 버려야 할 것 같다. 한 달에 두 번쯤은 한아름 꽃다발을 사서 계절의 색감을 만끽하고 싶다. 그러려면 생활비가 10만 원쯤은 더 필요할 것 같다. 머릿속에서 수십 번 집을 비우고, 옮기고 살림살이와 옷가지를 들였다가 내버린다. 부질없이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며 허비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정말 많다.
그러니까 복권에 당첨되면 아 얼마나 좋을까. 나는 허튼데 돈 쓰지 않고 정말 오래오래 아끼고 간직할 물건들만 골라서 잘 쓸 수 있는데, 그 돈을 귀하게 여기며 좋은 일에도 쓸 수 있는데, 왜 그런 행운은 내게 오지 않는 걸까? 로또도 사지 않고 그런 망상에 빠지는 시간도 생각보다 정말 많다. 이게 다 인스타그램 때문이다.
그래도 인스타그램 덕분에 내가 어떤 취향인지, 세상에 얼마나 아름답고 유용한 것들이 많은지 알게 됐다. 노밀가루 다이어트 레시피나 다이소에서 꼭 사야 하는 물건 TOP 5 같은 정보들, 신박한 용도의 가전제품과 살림꿀팁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눈동자를 따라서 엄지 손가락은 열심히 저장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그렇게 스크랩한 사진과 영상을 다시 들춰보는 일은 거의 없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이미지들에 좋아요와 저장버튼을 눌러대다가도 결국 다시 찾는 건 내 개인 계정의 스크롤을 내릴수록 더 작고 통통해지는 딸의 사진이다. 사심 없는 눈빛에 뻐끔대는 입, 뒤뚱거리는 몸놀림, 천사의 주문 같은 옹알이 소리들.. 그것만이 나의 스테디셀러다.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이 낳기 전날 새벽 내내 진통하던 패브릭 소파, 매트가 깔려있던 거실 그리고 미끄럼틀, 요란한 소리를 내던 아기 장난감들, 생일 초를 불던 동그란 식탁, 처음 사줬던 아기의자, 딸의 몸이 쏙 들어가던 빨래바구니 같은 물건들은 어느새 하나도 내다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 되어있다. 그리고 집을 둘러보면 다시 사랑스럽다. 이미 충분히 좋은 것을 갖고 있었단 것을 깨닫는다.
아이에게 더 좋은 물건, 다양한 경험과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복작거리는 살림으로 가득한 우리 집에서 부대끼며 사는 기억을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한껏 달아오른 이 여름에 내가 부릴 수 있는 최대의 사치는 칼 없이도 껍질이 술술 벗겨지는 말랑이 황도 복숭아를 한 상자째 사는 것, 에라 기분이다 옆에 있는 천도복숭아도 한 상자 같이 주세요 하는 것.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두고선 앞머리가 땀에 가닥가닥 절어 붙은 채 집에 온 꼬맹이가 허겁지겁 물이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를 먹는 옆모습을 지켜보는 것. 샤워하고 나온 아이의 머리를 말리며 엷은 샴푸향을 맡는 것. 저녁이 되면 집안의 조명을 모두 노란빛으로 물들이고 가족이 한 집안에 모여있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히 부자라는 것을 아는 것일 테다.
종일 가난하다가도 생각을 고쳐먹고 정신 차리면 금세 부자가 되어있네.
202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