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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기쁨

by 김윤담

요즘 아이가 제법 글밥이 긴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단어의 뜻을 묻는 일이 부쩍 늘었다. 물어오는 족족 무심코 답하다가 오늘은 메모장에 받아 적어봤다.


- 홀가분하다, 언저리, 담벼락, 수척하다, 혹독하다, 해지다, 뜬눈, 응시하다, 반점, 길동무...


아이의 시선에 낯선 단어들을 모아놓고 보니 어쩐지 내게도 새롭다. 마법천자문의 열혈독자인 딸은 한자를 유추해 제법 뜻을 짐작하기도 하는데 기특하다. 예를 들어 '불신'이라는 단어를 보고 '아닐 불(不)'과 '믿을 신(信)'을 떠올리는 식이다.


영 엉뚱한 대답을 할 때도 나름 재미가 있다. '귀화'의 뜻을 묻길래 어떤 의미일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귀여운 화장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밖에도 재밌는 대화가 많았는데 기억력의 한계로 다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얼마 전 구입한 황선우 작가가 출간한 '아무튼 리코더'의 귀여운 책 표지에 반해 엄마보다 먼저 읽어보겠노라 떵떵거리던 녀석은 책을 펼치자마자 쏟아지는 새로운 단어의 파도에 놀라 질문을 쏟아냈다.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계속되는 질문세례에 금세 지쳐버렸다. 역시 스스로가 엄청나게 인내심이 많거나 다정한 엄마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점점 인자함을 잃어가는 엄마의 표정을 읽은 아이는 다시 원래 자신이 읽던 책을 집어 들었더랬다. 그제야 학년별 권장도서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나였다.


내심 아이가 내가 읽으려 구입한 책을 골랐을 때 놀랍고 기특했지만, 결말은 또다시 시트콤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단어에 호기심을 느끼는 아이의 눈망울은 처음 한글을 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이다. 아이가 익히는 단어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서로 점차 넓고 깊게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제는 같이 '미지의 서울'을 보다가 남자 주인공 호수가 미지에게 고백하는 장면을 보고 딸과 함께 설레하며 손뼉을 마주쳤다. 마치 소녀들처럼 오두방정을 떨다 보니 내가 애랑 뭐 하고 있나 싶었지만 또 우리 딸이 언제 커서 드라마 속 로맨스에 설렘을 느낄 수 있게 된 걸까 신기했다. 그래도 키스신은 아직 안돼! 하고 구간 점프를 했지만...


걸음마를 떼고, 말문이 트이고, 수저질을 하는 기초적인 행동에서 나아가 점점 더 성숙한 모습으로 여물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이 즐겁다.


202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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