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눈에 거슬리는 아이의 행동은 결국 내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 요즘이다.
반찬을 집을 때면 아슬아슬하게 꼭 흘리거나 국물을 식탁에 떨구는 것, 물을 따라도 꼭 컵 옆으로 살짝 비껴 따른다던지, 특히 밀가루 같은 가루류를 볼에 부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쉽게 물건을 놓치는 나의 특성(?)은 반복될 때마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다만, 아이는 그럴 수 있다. 아이니까. 초등학교 1학년이던 작년까지만 해도 나와 똑 닮은 아이의 행동을 볼 때면 마음속에 참을 인(忍) 자를 새기며 묵묵히 치다꺼리를 해왔더랬다.
문제는 오늘 터졌다. 딸은 확실히 나보다 침착하고 야무진 아이이다. 이제 많이 커서 손 가는 일도 줄고, 혼자서도 자신의 몫을 잘 해내는 녀석이라 내심 흐뭇하고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됐으니 앞으로 내 손 갈 일은 점점 더 줄어들 거라고..
아이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나도 자리에 앉으려는데 식탁 밑에 물이 흥건하고 그 주변으로 발자국이 나 있었다.
"화장실에서 발 씻고 왔어?"
"아니?"
"몰라"
"이상한데? 네 발자국이 잔뜩이잖아 여기"
"모르겠는데"
뭔가 숨기려는 낌새가 느껴지는데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하는 아이의 태도는 스멀스멀 화를 지폈다.
"물 쏟았으면 쏟았다고 이야기하고 닦아야지. 이거 너 발로 슥슥 민 자국 지잖아. 모르긴 뭘 몰라."
엄마의 눈동자에 서린 심상찮은 기운을 읽었는지 아이는 곧 이실직고했다.
"물 가져오다가 쪼꼼 쏟았어."
"그래서 발로 대충 이렇게 했어? 근데 왜 모른다고 해? 닦아달라고 하던지, 네가 닦아야지."
나를 올려다보며 민망한 듯 붉어지는 아이 얼굴의 변화를 읽는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표정이 꼭 동화에 나오는 무민트롤 같다.
아마 나쁜 의도가 있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물 흘리고 난 뒤 귀찮은듯한 엄마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 많이 쏟은 것도 아니니까 발로 슥슥 밀어두면 엄마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이 읽힌다.
그래도 승질은 난다. 이번에는 물을 흘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대충 발로 밀어 얼버무리려 했다는 게, 나의 물음에도 모른다는 말로 응수했다는 게, 순식간에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 숙제도 없다고 거짓말하거나 친구들과 나 몰래 학원을 빼먹고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불러왔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다. 친구 같은 엄마보다 권위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저런 버르장머리는 초장에 잡아야 한다. 오늘 따끔하게 혼내주리라.
"솔직하게 말을 해야지. 이런 식으로 대충 눈 가리고 아웅 하려는 태도 때문에 혼나는 거야. 알아?"
"몰라"
"몰라? 뭘 몰라"
"어차피 물 흘리면 엄마가 화내잖아."
"푸흡, "
순식간에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으려 했으나 늦었다. 그 순간 권위를 잃었다. 이 녀석은 다 알고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잔소리 들을 테니 한번 피해보려는 도박이자 전략을 나름 써본 것이다.
"뭐?" 다시금 올라온 감정을 부여잡고 훈육의 분위기를 이어보려 했지만 기세는 딸에게로 넘어간 후였다.
"진짜잖아. 어차피 물 흘렸다고 뭐라 했을 거잖아. 결국 지금도 혼나고.."
"아니 그래도 이건 다른 문제지. 물 쏟아서 혼나는 건 그냥 잔소리 정도고, 지금은 네가 이렇게 해놓고 모른 척 거짓말한 거잖아. 이건 다른 문제고, 네 잘못이지. 실수가 아니라."
엄마의 허를 찌른 녀석의 눈빛에는 금세 당당함이 차올라 있었다. 참나. 대답도 없다.
"그래서 잘못 안 했다는 거야?"
"별로 잘못은 아닌 거 같아."
"물 쏟은 건 잘못 아니고, 네가 어설프게 발로 밀어서 바닥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모르쇠 한 건 잘못이야. 모르면 기억해." 하고 사건은 일단락. 된 줄 알았다.
일단 밥이 식기 전에 찝찝한 종전 선언 후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식사를 끝낸 뒤 집에 온 남편은 곧장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곧이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옷방에 물 흘린 사람 누구야?"
아뿔싸. 나였다. 드레스룸 건조기의 물통을 비우려 갖고 나오다가 물을 똑 똑 흘렸던 순간이 기억났다. 이따 닦아야지 하고 까먹은 것도.
그리고 어디선가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배드바츠마루 같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딸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또다시 허를 찔린 내 표정을 읽은 녀석은 "으으이이!!!" 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오버스럽게 씩씩대고 있었다.
2025.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