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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Feb 05. 2024

엄마라는 그늘에 햇살이 든다

3월이 되면 딸 아이는 초등학교에 간다. 아직 초등학교 입학 준비랄 것도 하지 못했는데 벌써 취학통지서가 날아와 얼떨떨하면서도 마음이 들떴다. 한편으론 지금도 반에서 제일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서 잘 할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도 들었다. 


이제 곧 책가방도 사줘야겠지. 주말에 다녀온 아울렛에서 아이는 핑크색 보라색 반짝이는 책가방을 매보며 설렌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가면 유치원 친구들과 헤어지게 될텐데 괜찮아? 물으니 

괜찮아, 내가 기억하면 되니까. 라고 답하는 딸. 

뱃 속에 품고 낳아 지금껏 내가 키웠건만 딸의 어떤 말들은 너무 성숙해서, 너무 여물어서 낯설다. 


내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늘 친구들 무리에 속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불안했던 것 같다. 

내 안의 중심이 제대로 잡혀있지않았기 때문이었겠지. 

그런데 딸을 보면 아직 어리지만 내면의 힘이 단단하다는 것이 느껴질때가 많다. 

그럴땐 뭉클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글을 빨리 떼는 것보다, 알파벳을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바로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학습성과보다 결국 아이의 평생 동력이 되는 건 꽉찬 마음, 자존감이라 불리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단호한 엄마이다. 

안되는 것은 단호하게 제한하고, 무언가를 허용하는 범위도 명확하게 짚어준다. 

되도록 내가 제시한 조건이 아이의 떼나 울음에 타협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왔다. 

누군가는 내가 너무 무서운 엄마라 했고, 누군가는 아이를 참 잘 키운다고도 했다. 


요즘같이 물질과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에 유아기 만큼은 순수하게 자신만의 재미와 시선을 갖게 하고파서 

36개월까지는 영상도 보여주지 않고 키웠다. 

그 이후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지만 시청시간과 환경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예를들면 하루에 모든 할 일을 끝낸 이후에 영상을 볼 것, 

영상은 한글 대신 영어영상을 볼 것, 유튜브 알고리즘에 손을 대지 않을 것. 

아주 처음부터 아이에게 제시하고 지금까지 지켜온 내용이라 딸도 큰 거부감없이 잘 따라주고 있다. 


그리고 달콤한 젤리, 초콜릿, 사탕 류의 간식도 특별한 경우에만 준다. 

집에서는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간식을 주지 않다보니 유치원이나 바깥 외출에서 사주거나 선물 받으면 아이가 매우 기뻐한다. 그리고 엄청 아껴먹는다..

친구 엄마들과 카페에서 만났을때 뽀로로 음료수를 한 모금씩 아껴먹는 모습을 보고 다들 놀라던 게 기억난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다 마시고 노는데, 우리 딸만 자리에 앉아 주스의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여서 과연 이게 맞는걸까? 싶기도 했지만, 음료에 들어있는 당분이 몸에 결코 좋지 않은 것이니 아직 나의 영향력이 통하는 나이까지는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어린아이이기에 내가 정한 육아방식대로 키우고 있지만, 과연 이 방식이 맞는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늘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래가 아는 만화영화도 잘 모르고, 장난감도 적은 편인 아이라 혹시 위축되지는 않을는지.. 요즘 아이들은 워낙 모든 것에 풍족한 환경이기에 그것을 부러 채워주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하지는 않을는지.. 


그런데 몇일 전 아이가 나의 마음을 100%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에피소드가 있었다. 


책가방을 둘러보려 다녀온 아울렛에서의 일이다. 

물건으로 가득한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아이가 행거 사이에 자꾸만 숨는 것이었다. 

처음엔 장난삼아 몇 번 반응해줬지만, 매장이 워낙 커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없어진 것도 모르고 엄마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물었더니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데 찾지도 않고 가버릴 리가 없잖아."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흘겨보던 그 표정과 말투

"엄마가 너 사랑하는거 알긴 알아?"

"응, 엄마가 나한테 화내도 사랑을 하긴 하는 거 알아. 그리고 나도 엄마한테 짜증내지만 사랑을 하긴 하니까."


이 날의 대화는 딸의 만6살 끝자락 너무나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그래 이거였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아이에게 정말로 선물하고 싶었던 마음.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단단함.


아이의 그 한 마디로 나는 누구의 판단도 아닌 나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딸에게 의심스럽지 않은 사랑을 주는 엄마였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원했던, 사무쳤던 '엄마'라는 이름에 걸맞은..


그리고 이 아이게 대한 믿음도 더 확고해졌다. 

또래보다 키가 작다한들, 엄마의 충만한 사랑을 느끼는 이 아이는 어디에서든 자기 몫을 확실히 해낼 수 있을거라고. 


내 안에 있던 '엄마'라는 그늘에 햇살이 든다. 

아이가 아기일때는 몰랐던 생경한 감정이 나날이 다채롭게 다가온다. 

딸이 점점 커가면서 이 아이와 어떤 대화를, 어떤 사랑을 나누게 될까. 

최고의 엄마는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만큼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엄마가 되어야지.

말캉한 딸의 볼을 쓰다듬으며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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