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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Feb 25. 2016

나다움을 인정하고 지향하기

직장 박차고 나온 사람의 우울극복기(1)

역시 인간은 재미있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관찰하면 재밌는 점을 발견한다.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의 논리를 만들어갈 때

1. 정갈한 손글씨로 노트를 쓰시는 분

2. 메모장을 켜고 갈겨쓰기 시작하는 사람(나)

3. 일러스트레이터부터 켜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

4. 화이트보드에 알고리즘부터 그리는 사람

지난주에 동일한 작업을 진행하는데 2, 와 3으로 일하는 판이한 모습을 보고 역시나 뇌 구조가 다른 걸 느끼고 있다.


Excelsior(더 높이!)

2년차 호기롭게 퇴사한 이래 불시착한 곳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는 회사에서 보지 못했던 독특한 사람들에 취해있었고, 나는  한동안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싶었다. 무언가 성과를 만들어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엔 좋은 것이 많아 보였고 똑똑한 사람들은 더더욱 많아 보였다. 날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고 여겼다. 더 높이높이 올라서 좋은 곳, 그곳이 어딘지 몰라도 일을 해보고  싶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툭 떨어졌다.

대학에 입학한 이래 가을이 되면 항상 아프다. 올해는 유난히 심했다. 겨울부터 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아팠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웠고 되는 게 없어보인다. 감정적으로 취약해졌고 쉽게 지친다. 나만 멈춰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약을 먹는다. 평소에 일주일이면 할 수 있는 일을, 한 달동안이나 할 수 없었다. 어디로 나가는지 모르겠는 통장잔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를 들어간 동기들은 대리를 달았다.

그럼 난 지금 뭐하고 사는건가?
 나는 이 기회비용을 들이고 어디에 있는 것인가?


몸을 추스리고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게 된 뒤에서야 알았다. 사람에게 맞는 페이스와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 남들과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을 다듬는 과정이 다른 것처럼. 지금 해야 할 일과, 지금 써야 할 돈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이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지금도 좋아. 내가 선택한 거니까. 라고 외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세월이 걸렸다. 학교에 돌아와 학생이 되어 자유롭다, 라고 생각했었던 의미를 다시 깨달으면서.


복세편살

얼마전에 병원을 갔다 이상한 헌팅을 당했다. 여대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는데 장진 감독의 최초 연극의 어떤 등장인물 이미지를 잡고 있는데, 내가 그 사람 같단다. 서울 한 가운데 살면서 통근을 하는 20대 후반의 여자, 스물일곱에 화장도 않은 채 거북이처럼 배낭 안에 컴퓨터를 들쳐매고 다니는 사람. 좌우명을 묻는 그 사람에게 나는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를 외쳤다.

대충대충 살고 싶지는 않다. 대신 무리하지 않고 "나를 보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실수하면 남들이 욕하는데 여기 자기 자신까지 합세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게다가 자책하는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기까지 하는 건 진짜 스스로에게 너무한 게 아닌가.
- 서늘한 여름밤 님의 블로그 중에서

아마 이렇게 말하고 내일은 머리를 쥐어뜯겠지. 공부는 어렵고 업무는 생각보다 더딜수도 있고 감기가 갑자기 심해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브런치라는 이 공간이, 나를 보듬는 방법 중 하나이다.


* 그리고 배경의 첫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unsplash.com/photos/AmPRUnRb6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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