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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Oct 31. 2020

다른 회사 면접 보러 갑니다

10. Thank you 감사합니다

1. Thank you(감사합니다, 영어) : 인도유럽조어 tong(생각하다)에서 유래

2. Danke(감사합니다, 독일어) : Denken(생각하다)에서 유래

 

 "그건 칙칙하다이가 상갓집 가는 것도 아니고"


 지난주에 면접이 한 건 있었습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근로계약기간이 이번 달 말에 종료되기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죠. 오후에 잡혀있던 면접이었기에 오랜만에 정장에 넥타이까지 차려입고 출근했더니, 역시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A회사를 다니면서 B회사 면접 보러 간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어차피 계약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여기서 근무할 수 없기에 솔직히 말했습니다. 다른 회사 면접 보러 간다고.


 그런데! 책상에 앉아 업무보고 있었는데 실장님께서 한 손에 하늘색 넥타이를 가지고 오시더니 저에게 슬쩍 건네주셨습니다. 순간 어리둥절해 있었는데 한 마디 툭 건네시는 겁니다.


 "지금 매고 있는 넥타이는 너무 칙칙하다. 이걸로 매고 가라"


 순간, 주책맞지만 눈물이 살짝 맺힐 뻔했어요. 다른 회사 면접 보러 가는데 잘 보고 오라며 넥타이까지 빌려주셨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원래 매고 있던 타이를 풀어헤치고 환한 색의 타이로 바꿔 맸습니다. 비록 그날 면접은 그다지 잘 보지 못했지만 뭔가 기분은 따뜻했어요.


 하지만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넥타이가 나의 심장을 후두려 팼어요. 때는 퇴사 하루 전날, 별다른 생각 없이 회사에 왔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대리님이 출근하자마자 슬쩍 내 자리로 오셨어요. 평소 장난기 가득한 대리님이었기에 또 무슨 장난치나 보다 했었는데, 갑자기 사선이 그려진 감색 타이를 하나 내미시더군요. 그러곤 실장님 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느낌의 한마디를 던지셨어요.


 "예전에 딱 한번 맸었는데 괜찮을 거예요"


 내색은 별로 안 했지만 이 때도 내 눈물샘 꼭지를 살짝 틀뻔했어요. 전혀 예상도 못했던 선물이었기 때문이지요. 원래 이곳은 계약직 분들이 퇴사할 때 초콜릿이나 과자 또는 다른 물건들을 손편지와 함께 남기고 가는 것이 전통 비슷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저는 오히려 선물을 받고 퇴사했던 것입니다. (이 대리님은 제 브런치의 26번째 구독자입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음 그 대리가 나지'라며 지금 이 글을 흐뭇한 표정으로 읽고 있지 않을까요. 아니, 그냥 구독만 해주시고 안 읽으시려나)

출근하자마자 받았던 감색 타이 (출처 : 직접 촬영)

 

 우리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면 "'고맙습니다'라고 해야지~"라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이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렇기에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어 줄 때 감사를 표하고, 반대로 나의 친절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면 ‘괜찮다, 별 것 아니다’ 등의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다른 언어들로 확인해 보면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집니다. 어원에 따르면 조금은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우선 영어로 고마움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표현 ‘Thank you’에서 thank는 ‘to think’ 즉, ‘생각하다’는 뜻을 가진 인도유럽조어(PIE)인 tong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당신이 나에게 해준 것을 생각하겠습니다’라는 의미가 되지요. 단순히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어떻게든 네가 베풀어준 호의에 보답하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독일어 danke(당케)도 thank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다’는 뜻을 가진 denken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프랑스 철학자였던 데카르트의 유명한 문장인 ‘Je pense donc je suis’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독일어로는 ‘Ich denken, also bin ich’라고 합니다)      


 포르투갈어로 ‘감사합니다’를 의미하는 표현 obrigado는 조금 더 책임감을 부여하는데, 이는 ‘의무적인’의 뜻을 가진 영어단어 obligate와 그 어원이 동일합니다. 라틴어 obligare는 ‘묶여있다, 의무감을 지다’는 뜻으로, 쉽게 말해서 위에서 언급했던 obrigado는 ‘당신의 호의에 대해 보답할 의무감을 지겠습니다’는 다짐에 가까운 것이지요. 프랑스어 merci는 누가 봐도 계산적입니다. 이 단어는 ‘임금, 가격, 대가’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mercēs에서 유래되었는데, 즉 ‘당신의 도움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단,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감사를 표현할 때에는 각각 gracias와 grazie라고 하는데 이는 ‘기쁘다, 호의적인’ 등을 뜻하는 라틴어 gratus에서 유래한 것으로, 크게 계산적인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단순히 ‘당신의 친절함을 경험하여 기쁘며 호의적인 마음이 생겼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고맙다는 여러 표현들 (출처 : Unsplash)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고마운 마음을 생각해 두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계산적이기보다는, 받은 도움을 다시 돌려주겠다는 훈훈한 마음가짐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호의에 대해 깊은 의미를 두지 않은 채 대충 말로만 ‘고맙다’하고 넘어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받은 호의는 잘 기억해 두었다가 어떤 방식으로든 되돌려 주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 아닐까요?


 저는 일주일 사이에 기억해야 할, 아니 기억하고 싶은 감사함을 몇 번이나 느꼈습니다. 실장님과 대리님은 대수롭지 않게 무심한 듯 건네주었던 넥타이가 저에겐 특별한 의미였던 셈이지요. 그분들께 이 마음을 다시 다른 방식으로 되돌려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지만,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대신 제가 그 마음을 나중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또 다른 취준생에게 돌려준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지 않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봅니다.


 참고로 ‘고맙습니다’에 대한 대답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영어로는 ‘그건 별 것 아니니깐 신경 쓰지 마라’는 뜻의 ‘It’s nothing’, ‘너는 언제나 괜찮다’는 의미의 ‘You’re welcome’, ‘내가 좋아서 한 것이다’는 뜻의 ‘My pleasure’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No worries’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는 ‘걱정하지 마라’는 뜻으로, 받은 호의를 다시 어떻게 베풀까 고민하지 말라는 의미가 되지요. 프랑스어, 스페인어, 그리고 이탈리아어도 언어마다 다양한 표현들이 있지만 가장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은 각각 de rien과 de nada, 그리고 di niente인데, 이는 모두 영어의 ‘for nothing’, 즉 ‘무엇인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 2020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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