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Hiccup
손과 손가락을 통해 관계를 맺기 시작했던 우리 사이에, 이번엔 조금 다른 방식의 신호가 찾아왔다. 딸꾹. 분유를 다 먹고 나면 종종 들려오는 소리다. 처음엔 너무 귀엽고 신기하기만 했다. 이 조그만 아기도 사람이구나, 우리가 하는건 다 하는구나. 소리도 작고, 표정도 천진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불안이 밀려왔다. “혹시 아이가 불편한 걸까?” 먹인 분유가 올라오는 건 아닐까, 체한 건 아닐까. 작은 소리 하나에도 우리는 부모로써 수십 가지 걱정을 품는다.
어떻게든 그 답답함을 멈추게 해주고 싶었다. 다 큰 성인이 하는 것처럼 숨을 참는다거나 허리를 숙여 물을 먹일 수는 없기에,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여기저기서 찾아 시도했다. 딸꾹질이 멈춘다는 팁들을 들은 그대로 따라 해봤다. 분유를 아주 소량 다시 먹여보기도 하고, 갑자기 체온이 떨어졌을까 싶어 양말을 다시 신기고, 모자를 씌워보기도 했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몇 분쯤 지나면 어느새 딸꾹질은 조용히 멈추곤 했다. 그게 효과였는지, 그냥 시간이 해결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신생아는 생후 몇 주 동안 하루에도 여러 번 딸꾹질을 한다고 들었다. 대개는 짧고 금방 멈추지만, 가끔은 10분 넘게 이어질 때도 있다. 의사들은 말한다. “딸꾹질은 정상입니다. 횡경막의 미성숙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이니 걱정 마세요.” 하지만 그 설명을 듣고도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 딸꾹질을 멈추게 해주지 못하는 내 모습이 어딘가 미안하고,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웠다. 육아는 바로 그런 순간의 연속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선택이, 때로는 제대로 된 돌봄이라는 것을 배우는 시간.
돌봄은 꼭 행동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기다려주는 일도, 아이에게 세상을 견디는 법을 가르치는 중요한 방식이 된다. 일례로, 어느 책에서 봤는데 프랑스에선 ‘라 포즈(la pause)’라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한다. ‘잠깐 멈추기’라는 의미 그대로, 아기가 움직이거나 소리를 낼 때 곧장 반응하지 않고, 잠깐 멈춰서 지켜보는 태도다. 부모가 덜 개입할수록 아이는 스스로 다시 잠들 수 있다는 철학이다. 딸꾹질은 어쩌면 부모에게 보내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모든 소리를 멈추려 애쓰지 말라고.
참고로 ‘딸꾹질’을 뜻하는 영어 단어 hiccup은 1570년대 ‘hickop’이라는 형태로 처음 등장했는데, 이는 횡격막의 경련으로 인해 나는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낸 의성어라고 한다. 라틴어나 그리스어식의 고전적 어원이 없이 소리 그 자체에서 출발했다는 의미인데, 대신 고대 영어에서는 딸꾹질을 ælfsogoða라 불렀다. 직역하면 ‘엘프가 붙었다’는 뜻이다. 딸꾹질은 요정이나 정령의 장난이라 믿었고, 몸이 갑자기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존재의 개입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딸꾹. 딸꾹.
오늘도 아이는 그 짧은 리듬 속에서 자라고 있고, 우리는 그 리듬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로 걱정하고, 때로 웃고, 그러면서 천천히 익숙해진다. 그 작은 불규칙 속에서, 우리는 인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