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차려 주세요

[I] Infant

by 오환

분유를 먹이고, 딸꾹질을 지켜보다가, 어느새 아이는 또 울고 있었다. 이유를 알기 힘든 울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 모든 가능성을 하나하나 점검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말이 없었다. 배가 고파도, 어딘가 불편해도, 똥을 싸도, 덥거나 추워도, 단 하나의 방법으로만 알려왔다. 울음.


처음엔 그것이 막막했다. 왜 우는지 알 수 없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방금 전에 분유를 먹였고, 기저귀도 갈아주었는데 또 울기 시작하면, 모든 가능성을 다시 탐색해야 했다. 똥을 싸고 싶어서 힘을 주는데 잘 나오지 않아 힘들어하는 건지, 혹은 어딘가 아픈 건 아닌지. 안아주고, 토닥이고, 다시 눕히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울음이 멎으면 ‘이게 맞았던 걸까?’ 자문하게 된다.


‘Infant’는 단순히 ‘아기’를 뜻하는 단어지만, 그 어원은 섬세하고도 깊다. 이 단어는 라틴어 infantem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말하지 못하는’을 뜻하는 형용사 infans의 명사형이다. in-은 부정을 나타내고, fari는 ‘말하다’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infant는 문자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존재’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단지 신생아만이 아니라 말을 배우기 전의 어린아이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이 뜻은 이후 프랑스어 enfant(앙팡) 등 유럽 여러 언어로 확장되어 전해졌다.


우리는 말을 할 수 있는 시점을 종종 ‘인간다움’의 기준처럼 여긴다. 그러나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누군가다. 울음, 눈빛, 손짓, 숨소리, 체온—그 모든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세상과 교감하고 있었다. 아이는 세상의 언어를 모르지만, 부모의 눈빛을 읽고, 품의 온도를 기억하며, 표정의 변화를 감지한다. 돌아보면, 육아의 본질은 말보다 앞선 그 ‘읽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말 대신 울음을 해석하고, 손 대신 눈으로 신호를 찾는다. 아기가 울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함께 머무는 사람이 되는 것. 말은 없지만 감정은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그 흐름을 읽어야 하는 숙제를 해결해 갔다.


물론 오해도 많았다. 아이의 울음이 졸려서였는데 나는 배가 고픈 줄 알고 억지로 먹이려 했다. 아이는 피곤해서 짜증을 내는 건데 나는 장이 안 좋은 건 아닌지 걱정했다. 말이 없기에 오해는 잦았지만, 그 오해조차 결국은 돌봄의 연습이었다. 말을 못 한다는 것은 단지 표현의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더 세심한 감각과 주의가 요구된다. 말이 없는 세계에서 돌봄은 더욱 촘촘해진다. 그래야만 했다. 눈으로 듣고, 손으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대답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Infant는 그렇게 언어 이전의 교감을 가르쳐주는 첫 존재다.


아직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 아이는 제대로 된 옹알이조차 못한다. 아직 50일도 채 되지 않는 아기가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대신 울음과 표정, 그리고 우물쭈물한 몸짓으로 엄마와 아빠에게 천천히 말을 건다. 그 말 없는 언어를 하나씩 배우는 일, 그게 지금 우리가 하는 육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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