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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편집자가 되었는가? 2편

첫 취업 후 10년 만에 업을 찾았다

by watabook

1. 기자

이때까지도 나는 타이틀이 중요한 사람이었고, 폼 나면서도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직업은 기자였다. 기자. 딱 떨어지는 멋진 직업 아닌가. "불법증여를 통한 탈세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뭐 이런 말하는 상상도 했던 것 같고... 어쨌든 글을 아예 못쓰는 편은 아니고, 사회 이슈에도 관심 있으며,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이라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언론사 준비생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열심히 자료를 모았다. 한국에 언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모두가 간절해 보였다. 매일 아침 기상 인증을 하고, 스터디를 몇 개씩 돌리고, 논작(논술과 작문) 연습을 하고 자료를 공유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전형답게, 일단 가볍게 스터디 두 개를 시작했다. 어법 공부를 하고 한국어 능력 시험을 쳤다. 아침에 시사상식을 공부하고, 매일 도서관에 가서 신문을 읽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역시 나는 기자가 될 거였나 봐.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는 방송기자를 하면 딱이야"라고 했던 말이 10년이 다 되어서야 떠올랐다. 내 천직은 기자다!


그러나 몇 개월 하면서 이 공부에 회의감이 들었다. 내 성격상 최악의 경우 그래도 뭐라도 건질 게 있어야 집중하는 편인데, 공무원 시험도 그렇지만 이 시험도 만약 떨어질 경우 답이 없는 거다. 시사상식 천재면 뭐해? 퀴즈쇼에 나가지 않는 한 어디에 써먹지? 논술을 아무리 잘 쓰게 돼도 그걸로 돈을 벌지 못하면 무슨 소용일까? 그리고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모두 몇 년째 공부만 하고 있었다. 과연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은 그만큼 내가 간절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정말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안 되면 어떡하지?->되도록 더 열심히 하자! 이게 간절한 사람의 태도지, 안 되면 어떡하지?-> 그럼 안 할래. 이건 그만큼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노선을 바꿔 다른 걸 건드렸다.



2. 공연기획자

어릴 때부터 음악이랑 공연을 정말 좋아했다. 좋은 음악을 발견하면 세상 짜릿했고, 분위기 좋은 펍에서 친구들이랑 음악 들으면서 노는 게 인생 최대 낙이었다. 이십대 중반부터 페스티벌에 꽂혀 여름이면 페스티벌에 가서 살았다. 이게 천국인가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음. 나는 음악이랑 공연을 좋아하니까 공연기획자가 천직일지도 몰라. 영어도 할 수 있으니 좋은 아티스트 섭외해서 내한 공연을 기획하고, 페스티벌까지 하면 더 좋겠다. 역시 덕업일치가 진리일지니..!


그래서 또 알아보기 시작했다. 공연예술대학원과 사설로 세운 공연기획 전문가 과정이 있었다. 대학원은 이미 하나 다니고 있으니 또 하나 다니기는 좀 그렇고, 그럼 사설 학원을 다녀볼까? 그러나 그 전에 일단 업계가 어떤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 중 하나의 총감독님을 만나 인터뷰를 빙자해 궁금한 걸 속속들이 물어봤다.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거의 매번 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일반 직원이 아니라 수장까지 올라가려면 많은 어려움을 참아내야만 했다.


또한 큰 자본을 토대로 한 굵직한 페스티벌이 몇 개 있을 뿐, 한국에 제대로 된 음악 페스티벌 산업이 형성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 한국은 내수 시장이 무척 작은 데다가, 페스티벌 시장도 트렌드처럼 휩쓸고 지나가면 그만인 것 아닐까? 10년, 20년 후에는 독자적인 산업의 규모로 돌아가고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메이저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어야 일하다가 짤려도 옮길 수 있을 텐데, 선택지가 많이 좁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이 일도 너무 하고 싶었다면 지금 하고 있을 텐데, 역시나 아니었다.



3. 직업 음악인

음악을 좋아하니까 작곡을 배워서 음악을 해볼까?

재능이 없어서 패스-


그럼 뭘 해야 하는가!!!!!!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이제는 기준을 세웠다.


1. 잘하는 것.

2. 적어도 못하지 않는 것.

3. 최소 생계비 이상의 수입이 있을 것.

4. 한 회사에서 나와 다른 회사로 쉽게 옮길 수 있을 것. 즉, 업계가 유의미한 산업 수준일 것.

5. 나중에 회사 없이도 먹고살 수 있을 만한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


고민을 하다하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대학 졸업 전 공채 준비하면서 자소서를 하도 쓰다 보니 어떤 감 같은 게 생겼다. 친구나 후배가 가끔 자소서를 봐달라고 보내오면, 문장 단위로 고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성향이나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그 회사의 스타일을 고려해 전체를 뜯어 고쳤다. 한 마디로 자소서에 어떤 캐릭터를 부여했다. 당시에는 뭔지도 모르고 본능적으로 했던 일이지만 나중에 출판계에 들어오고 보니 그 작업이 바로 책 패키징과 편집이었다.


아, 이런 일을 하면 참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한 번도 생각 못한 선택지였다.


대부분의 경영학과 학생들이 돈 많이 주는 회사에 가려고 발버둥 쳤기 때문에, 뭔지 모르지만 돈을 잘 안 줄 것 같은 출판사는 생각도 안 해봤다. 주위에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전무했으며, 편집자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니, 사실 관심이 없었다. 나는 대기업에 가야 했으니까. 연봉은 4천만 원이 넘어야 하고!


인터넷 창을 열어 출판 과정을 찾아봤다. 가장 유명한 출판 예비 과정은 SBI(서울출판예비학교)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겨레출판편집학교가 있었다. 한겨레출판학교가 딱 한 달 반 과정이었고,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방학 기간에 짧게 경험할 수 있어 바로 등록했다.


매일 하루에 약 6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이런 신세계가 있나 싶었다. 책이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편집자는 이런 일을 하는구나, 책은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하는구나 등등.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책 만드는 일은 퇴보가 없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배우고 공부한다. 어제의 지식은 잊고 새로운 지식을 채운다. 내 좁은 세계를 넓히는 새로운 관점을 매일 배운다. 내게 딱 맞는 일이었다.


대학원 졸업하기 3개월 전, 마침내 첫 출판사에 편집자로 취업했다.




스물 네 살의 가을이 생각난다. 고작 3개월이기는 했지만, 살면서 그렇게 많은 거절은 처음 당해봤다. 잘 알지도, 관심도 없던 기업에 사력을 다해 원서를 넣고 서류부터 광탈하거나 면접에서 차갑게 외면받던 시절. 처음 겪는 사회의 비정함에 절망하고 울어재끼던 시절. 이렇게 못난 존재구나 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절.

결국 대기업에 취업했고(그놈의 대기업), 앞으로 인생은 탄탄대로라 생각했다.


10년 후, 나는 아르바이트와 사업을 병행하면서 신입사원 때 받던 연봉의 2/3를 벌고 있다. 유명한 회사의 사랑받는 직원도 아니고, 빛나는 직함도 없다. 스물 다섯 살에 어떤 미래를 상상했던가? 그땐 뭔지 몰라도 아무튼 삼십대 중반이면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남편과 애도 있고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에 연봉은 한 7000만 원에 짱짱하게 잘나갈 줄 알았는데, 이게 현실이다. 스물다섯 살에 생각한 그건 판타지일 뿐이다.


물론 첫 회사 동기들은 지금 대부분 집과 차가 있고 결혼도 하고 애도 있고 잘산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태어난 그들이고, 나는 서른다섯에 이 모든 걸 갖췄어도 불행했을 것이다. 답답한 걸 못 참고, 일을 할 때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납득해야 할 수 있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조직에서는 두드러기가 날 것 같고, 주변 사람이 날 싫어하는지 극도로 신경 쓰며, 무엇보다 일 자체가 무척 중요한 사람인데, 그 무료한 조직 생활을 하다가 어디가 아프지는 않았을까?


현재 생활비를 아껴 쓰며 살지만, 친구들한테 농담처럼 '나처럼 가난하면'을 남발하지만, 이 이상 나은 삶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좋아하면서 적어도 못하지는 않는 일을 찾았고, 아침에 출근을 안 해도 되며, 억지로 하는 일이 없고,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길로 가고 있으므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고 있으므로.

그리고 사업 초기에는 다 비슷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돈 많이 벌고 고생 하나도 안 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경로는 완전히 다르지만, 중간에 4번 5번은 빼먹었지만, 애초에 주어진 답이라 생각했던 6번으로는 살고 있다(난 왜 편집지가 되었는가? 1편 참조). 즉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처음에 생각했던 남부럽지 않은 것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ㅋㅋ 부러운 사람이 없긴 하니까 맞긴 맞다.


아직도 아빠는 나한테 인생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지 말라고 하시는데,

아빠도 똑같기 때문에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으시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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