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자소설 고쳐주다 직업이 되기까지
스물다섯 살까지는 인생에 주어진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1.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2. 사회에서 인정받는 스펙 쌓기
3. 대기업에 취업하기
4. 결혼하기
5. 아이를 낳고 잘 키워서 편안한 노후 보내기.
6. 남.부.럽.지.않.게.살.기
그래서 3번까지는 그럭저럭 했다. 경영학과 출신이랍시고 (경영학 지식은 별로 없으면서) 최소 인풋 최대 아웃풋을 추구했고, 무조건 돈을 많이 주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회적인 타이틀이 중요했다. 남들이 봤을 때 ~~를 잘하고, ~~도 갖췄고, ~~도 남한테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달렸다.
대학교 졸업할 시점까지 꿈이고 적성이고 고민 한번 안 하다가, 취업 시즌이 되자 남들이 하듯 똑같이 모든 대기업에 원서를 넣었다. 자소서를 쓸 때는 각 기업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조사해서 왜 내가 귀사에 입사해야만 하는지를 줄줄이 써서 원서를 넣었다. 그렇게 40군데쯤 되는 회사에 지원했다.
LG패션 면접에서는 "저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늘 LG패션의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거짓말)
CGV 면접에서는 "영화관에 갈 때마다 CGV만의 독보적인 서비스에 깜짝 놀랍니다."(영화를 보러 안 감)
롯데카드 면접에서는 "카드는 역시 롯데카드죠."(롯데 싫어함)
정말 열심히 했다. 나는 열심히 안 하는 법을 몰랐으니까. 뭐든 대충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편집자가 될성부른 나무였을지도... (왜 편집자는 대충 하면 안 되는 직업인지는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결국 잘 알지 못했던, 그러나 가보니 꽤 좋았던 한 대기업에 합격했고, 나의 성공시대 시작되는 줄 알았다.
처음엔 좋았다 정말. 매일 아침 여의도역에 내려 잘 빼입은 회사원들과 함께 종종걸음으로 각자의 건물로 들어갔고, 업무 전에는 지하 매점에 내려가 회사에서 준 쿠폰으로 동기와 커피를 사 마셨다. 점심 때는 목에 사원증을 걸고 여의도 공원까지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다. 퇴근하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근처에서 술을 마셨다. 회사 동기들뿐 아니라 대학 선배들도 주변 증권사에 많이 있어 학교 사람들과도 자주 놀았다.
팀에는 바로 윗 사번의 남자 선배가 셋 있었고, 나는 유일한 젊은 여자 직원으로 상사들의 예쁨도 많이 받았다. 훗날 돌아보면 그건 내가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팀에 활기를 더해주는 꽃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10년 전의 회사 문화는 그럴만도..). 그래서 좀 나대기도 했던 것 같다. 남자 선배들한테 되도 않는 장난 막 치고...
어쨌든 회사생활은 즐거웠다. 2년 차가 되기 전까지는.
이게 내 인생일까?
회사에는 딱히 문제가 없었다. 내가 문제였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엑셀을 만졌다. 누가 보면 운이 좋다고 하겠지만, 업무가 별로 없었다. 영업 쪽이 아니라 지원부서였기 때문에 프로그램에서 데이터를 내려받아 보고서를 만들고, 왜 수금이 안 되는지나 확인하면 됐다. 해외 지점과 소통할 때 영어를 조금 쓸 수는 있었지만 그리 대단한 비즈니스는 아니었다.
다른 동기들처럼 엄청 바빴으면 이런 생각을 안 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거의 완벽했다. 사람도 대부분 젠틀하고 좋았다. 조직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은 있었지만, 그래 봐야 사원 2년 차인데 뭐 그리 큰 걱정이 있겠는가. 회사는 지루하고 점점 숨이 막혀왔다. 고요한 사무실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히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얀색 석고 패널에 갈매기 형태의 3자 모양이 규칙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막막함을 생각하면 사무실 천장 무늬가 떠오른다.
주말에는 약속을 하루에 두세 개씩 잡고,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했다. '넌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게 취미'라는 친구의 이죽거림을 무시하고 여러 가지 재미난 것들을 섭렵했다. 당시 워라밸이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일과 삶의 조화'라는 고운 우리말은 있었다. 정말이지 일과 삶을 조화시켰다. 하지만 주말에 그렇게 신나게 놀면 월요일에 회사가 더 가기 싫었다. 하루에 8시간씩 불행한데, 그깟 퇴근하고 3시간이 즐거우면 뭐 해? 주말은 짧고.
당시 일기장을 보면 회사 가기 싫어서 별 난리를 다 쳤다. 왜 퇴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별별 개똥철학을 볼 수 있는 일기를 조금 발췌했다. (교열 훈련을 받기 전이라 띄어쓰기 구림 주의)
2010년 10월 24일
앞으로 10년을 내다 보았을 때 무엇이 더 잘된 것일줄은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성실히 일하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 주재원을 나갈지도 모른다. 캐나다나 이탈리아 혹은 영국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말 외국 주재원 나가는 것만이 이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된다면 직무나 내 적성이나 희망 꿈 열정은?
산업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쉽게쉽게 다니고 나름 괜찮긴 하다. 여자로서 안정적이다.
그렇지만... 난 자아실현을 하고싶다.
다른 여자들과는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나 기준이 조금은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아직은 어리다.
이제 곧 27세가 되지만 아직은 마지막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멈추고 주저앉으면 이게 내 인생이 된다.
더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더 좋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좋은 남편을 만나고 애들을 낳아서 나름 부족하지 않은 가정을 만들지라도
젊어서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사무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은 안정적으로 살기위해,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사는게 아니다
어느정도 젊었을 때는 그때 밖에 하지 못할 도전을 해야 하고, 그때 밖에 즐기지 못할 젊은 문화를 즐겨야 하며, 시기 적절한 좌절과 실망과 아픔 분노 슬픔 등도 견뎌야 한다
제 때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지 않고 게으르고 나태하게 늘어져 있던 난 생각보다 큰 시련을 겪고 있다.
남들 치열하게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적성과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그런 '나의 길'이란 건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다. 그저 남들 원서 쓸때 정말 많이많이 써서 내고 거절당하고 절망했고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승리했다.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나를 보내버린 승리였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유학을 갈까? -그런데 무슨 공부를 하지?
일이 지겨우니까 홍보팀으로 옮겨달라고 하자. -인사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직을 할까? -어디로? 경력이 짧아서 아예 다시 공채를 준비해야 할 텐데.
빡센 팀으로 옮겨서 일의 보람이라도 느껴볼까? -당시 남자친구가 극렬히 반대.
그렇게 1년 동안 고민하면서 토플 시험도 신청했다 취소하고, 외국계 제약사에 지원했다 떨어지고, 통번역대학원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관뒀다. 그럼 퇴근 후에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를 해보자! 결심하고 뭔가 공부를 했지만, 목표가 없는 공부가 될 리 없었다. 공부만 해도 뭔가 되는 시절은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회사를 떠나자
이 안에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 나이 스물일곱, 아직 뭔가를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포함해 내 주변 100에 99는 그냥 있으라고 했다. 어차피 사는 건 다 똑같다고. 그만한 회사 없다고.
하지만 난 뭔가가 꼭 있을 것만 같았다. 이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뭐가 됐든, 적어도 이 회사에서 10년 후에 똑같은 인생을 사는 것보다는 망할지언정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 '뭐라도'를 찾기 위해 퇴사했다. 2년 7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그냥 마냥 놀면 불안해서 또 아무 회사에나 취업할 것 같아서 일단 대학원에 진학했다.
처음부터 인정했다. 대학원 입학은 100% 도피성이라는 것을. 2년 동안 내 적성-남들이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겪은 정체성의 위기 한번 안 느껴보고, 20대 초반에는 술 먹고 노느라, 그리고 남들처럼 스펙 쌓느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과 꿈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누군가는 대학원에 들어가면 그 학비뿐 아니라 그 기간에 벌 수 있었을 돈까지 모조리 포기하는 거니 기회비용까지 계산하면 1억 5천만 원이 넘게 들어가는 거라고 말했다.
와. 경영학과는 난데 왜 그런 계산은 안 되는 거지?(이래서 재무팀이 안 맞았나 보다...).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기회비용이 얼마건, 내게는 대학원 2년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있었고, 그러면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가능은 한 거니까.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만약 2년 동안 내 적성과 꿈을 찾지 못해도, 그래도 석사 학위는 받으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역시나 돈은 안중에 없...).
대학원에 진학해 2년 동안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점쳤고, 내 관심에 들어 있던 모든 직업에 대한 탐색을 마쳤다.
난 왜 편집자가 되었는가?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