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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r 30. 2022

미운 놈은 왜 떡 하나를 더 받아먹는 걸까

  두 살 터울의 남매는 외모만 닮았지 180도 다른 기질과 성격을 타고났다. 첫째인 아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 답지 않은 점잖음과 조심스러움, 감정 기복이 적은 차분한 기질을 타고났다. 먹고 자는 시간이 일정하고, 기본적으로 순한 기질에, 울며 때 쓰는 일도 많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누구에게든 방글방글 잘 웃어서 보는 사람마다 아이를 ‘싱겁이’라 불렀다. 나는 첫 아이를 키우며 선배 맘들이 ‘너는 아이를 거저 키운다’ 했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진.     


  둘째인 딸은 태어날 때부터 오빠와 전혀 달랐다. 신생아 시설, 산후조리도우미 이모님은 ‘이렇게 안자는 신생아는 처음 본다’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깊이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신기해했다. 먹기는 많이 먹었으나 트림을 시키고도 먹은 만큼 토해내고, 잠도 깊이 못자며, 약한 피부에 발진이라도 올라오면 예민함이 극에 달아 목청껏 울부 짓는 아이. 오로지 엄마가 아니면 진정하지 못하는 딸의 울음소리에 온 가족이 환청에 시달리던 시기가 있었다. 여느 집 막내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 둘째도 살아남기 위해 눈앞의 경쟁자를 이겨먹어야겠다는 본능이 꿈틀 했으리라. 신생아 시절이 지나 둘째는 오빠의 가장 사랑하는 애착 인형을 탈취했고(지금도 똑같은 것을 찾지 못한 게 후회된다), 생후 6개월 즈음 혼자 앉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도 나지 않은 맨 잇몸을 드러내며 오빠를 깨물려고 달려드는 놀라움을 선보였다. 엄마와 아빠는 맹수처럼 포효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거친 세상에 내놓아도 걱정 없을 것만 같은 강인함에 내심 탄복하기도 했다. 아이는 오빠를 때릴 때 원목 장난감의 가장 날카로운 모서리를 이용했고, 놀아주다 깜박 잠든 아빠를 깨울 때에는 사인펜을 사용했다.(물론 그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딸은 순수한 해맑음으로 가득 찬 위험천만한 아기였던 것이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째를 키우며 공부한 육아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둘째가 생기며 ‘가족 내 희생양을 만들지 말자’ 던 다짐이 무색하게 첫째는 첫째대로 갑자기 생긴 오빠의 역할에 서러웠고, 둘째는 둘째대로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야단에 겁먹기가 일쑤였다. 딸을 천덕꾸러기 취급하지 않으려니 오빠의 피해가 컸고, 오빠의 박탈감을 채워주자니 어린 동생에게 오빠만큼 주지 못한 사랑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동생이 나오면 만사에 엄마는 죄인이 된다던 지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서성였다.      


  두 아이의 흔들리지 않는 정서적 안정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했다. 그때 내가 꺼내 든 무기는 칭찬이었다. 아이들은 그 어떤 꾸중과 야단에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사랑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었고, 엄마는 점점 야생으로 변해가는 집안에서도 멘탈을 부여잡을 수단이 필요했다. 칭찬이라도 해야 아이들이 예뻐 보일 것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숨 쉬듯 칭찬을 했다. 기분 좋게 일어나도, 편식은 하지만 밥만 잘 먹어도, 변비 없이 큰 일을 잘 봐도, 나의 멘탈이 무너져 나갈 것 같을 때는 심지어 숨만 쉬어도 칭찬을 했다. 특히나, 오빠보다 혼날 일이 더 많은 둘째에게는 물고 빨기를 추가했다.(가끔은 장난을 빙자해 슬쩍 깨물어버리기도 했지만)   



남매 관계도






  시간이 많이 지나 올해로 첫째는 여덟 살, 둘째는 여섯 살이 되었다. 다행히 두 아이는 서로 없이 못 사는 사이좋은 남매로 컸다. 물론 여전히 첫째는 점잖은 양반이고 둘째는 왈가닥 소녀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둘째는 무심코 위험한 행동을 저지르고 돌아서면 엄마에게 혼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거의 매일 크게 혼쭐이 나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안기는 딸을 보듬어준다. 그리곤 안쓰러운 마음에 다른 칭찬할 거리를 찾아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잘못도 더 많이 하고 혼나기도 더 많이 혼나지만, 결론적으로 혼나는 만큼 칭찬도 더 많이 받게 되는 이상한 구조가 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두 아이 모두 잘 크고 있으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옛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미우니 이거 먹고 입 다물어(?)’가 아니라 떡 하나 더 주며 ‘착하지~’하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하는 짓이 예뻐서라기보다 ‘예쁘다~예쁘다~’하며 예쁜 행동을 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 미운만큼 사랑 한 스푼을 더 얹어 더 예쁘게 키우고픈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사랑 한 스푼 듬뿍 담아 칭찬을 한다.          



   

          - 태권도에서 배운 주먹 지르기를 오빠 얼굴에 냅다 꽂아 버린 딸을 붙들고 혼내던 어느 오후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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