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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n 22. 2022

108 번뇌란 이런 것인가

수리야나마스카라 108배 챌린지 후기

  6월 21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요가의 날이다. 나도 몰랐다. 그냥 요가원 선생님이 알려줘서 안거다. 포털에 검색을 해보니 세계 요가의 날을 기념하여 인도 모디 총리가 기념 연설도 하고 그랬나 보다. 아무튼 그렇다.


  이번 요가의 날을 맞아 요가원에서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했다. 이름하야. 수리야나마스카라(태양경배자세) 108배 챌린지.


*출처: https://blog.naver.com/firsthurrah/221575090291



  부분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략 이런 걸 108번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평소 몸 아픈 건 세상없는 쫄보, 겁쟁이라 애초에 챌린지에 도전할 생각이라곤 전~혀 없었으나, '이거 하면 살 빠져요~'라는 선생님의 꾐에 귀를 팔랑이며 줏대 없이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야 말았다. 한편으론 믿는 구석도 있었는 게, 나 보다 훨씬 연장자들도 명단에 있기도 했고, '그래도 내가, 어? 4년이나 했는데, 하면 하지, 까짓 거.' 하는 호기로움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디데이가 밝았다. 땀을 많이 흘릴 테니 요가 타월도 준비하고, 머리도 질끈 묶어 올려 비장하게 수련실에 들어섰다. 집에서 20번씩 끊어 연습을 했을 때, 바닥을 짚은 손의 무게 배분 문제로 손목 통증이 왔고, 잘못된 호흡법으로 두통도 왔다. 오늘은 자세도 잘 잡고 호흡도 제대로 해서 무사히 완주하고 말리라.


  108배의 시작을 알리는 구령이 울렸고, 빠른 속도로 20번을 주파했다. 가끔 잡생각이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한다. 땀이 많이 나지 않아 매트가 미끄럽긴 하지만 아직까진 좋다. 그런데 이거 하다 보면 무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나?

    

  40번이 됐다. 20번이 두 번이다. 연습할 땐 힘들었는데, 막상 하니 할만하네? 탄력도 붙고. 집중 집중!!


  50번. 호흡이 거칠어진다. 코로 들이쉬고 내뱉기 어려워 입으로 뱉어내기 시작한다. 뱉어내는 호흡에 가끔 으허엌~하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쉬어가는 사람이 나온다. 나도 잠깐 쉴까? 아차! 내 양 옆에 파이팅 넘치는 선생님 두 분이 계시지... 하.... 좀 더 간다.


  60번. 횟수는 느는데 아직까진 50번까지랑 비슷하다. 쉬어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좀 더 가겠어. 난! 아직! 젊기에!!


  70번. 호흡을 크게, 깊게. 팔이 슬슬 떨려온다. 다리 힘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거 빨리 잡아야겠는데. 어어... 이대로 가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


  78번. (찌릿!) 어깨!! 어깨!!!  아... 어깨 아프다... 쉬고 싶다... 쉬고 싶다...  아직 어정쩡하니까 쪼금만 더...


  83번. (허리 삐끗) 읔!!!


  (83~90)  아기 자세... 아기 자세... 호흡... 호흡.... 씁씁후후...


  91번. 일어나야 해!! (털썩)


  (91~95) 아... 더 쉬면 못 잃어 나는데...  "일어나세요!!" 하는 소리가 뒤통수를 때린다. 쌤... 근데 저 허리 터졌어요...


  96번. 가볍게.. 가볍게... 끝까지...! (찌릿! 으엌!)


  108번. (털썩) 아... 하얗게 불태웠다....



  끝나고 옆 자리 파이팅 넘치던 선생님 한 분이 왜 중간에 멈췄는지를 묻는다. 나는 스스로가 핑계 많은 무덤인 걸 아는지라, 주저리주저리 핑계 대지 않으리라 단단히 다짐을... 하고 싶었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내 입이 이미 앓는 소리를 뱉어내고 말았다. 아파서요...라고.


  그렇게 내 첫 수리야나마스카라 108배는 끝이 났다.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회원들이 홀에 둘러앉아 하하호호 수박을 나눠먹고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허리... 허리.... 어서 가서 누워야 해.....


  수박 먹고 가라는 선생님의 말에 슬쩍 눈인사로 답을 하고 요가원을 나섰다.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포카리스웨트 500ml 한 병을 사 한 통을 다 비웠다. 그래도 해냈어... 잘했어...


  집으로 돌아온 뒤, 그 길로 나는 평평한 거실 바닥에 송장 자세로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누워있으니, 내가 자세를 하고 있는 건지 산 송장인지 구분이 안 되기는 하는데, 어깨가 욱신거리고 허리가 찌릿 거리는 걸 보니 아직 살아는 있나 보다. 그래도 기분 만은 상쾌하니, 이 정도도 나쁘진 않다.


  그런데...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수리야를 몇 번 정도 해야 할까?

  한... 천 번?





* 대문 사진 출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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