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feel like a very lucky guy
What, are you kidding me? Sundays?
I love Sundays. I live for Sundays.
The whole family's together.
뭐? 장난해? 일요일?
난 일요일이 좋아. 난 일요일을 위해 살아.
온 가족이 함께하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첫 대사다. 어쩌면 내가 가장 두 번째 정도로 좋아하는 대사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 역시 일요일을 위해 사는 놈이다. 그래서 난 이 대사가 좋다. 아마 나 말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고리타분한 창세기의 천지창조 예를 들지 않아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삶은 항상 휴식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 휴식엔 가족이 있다. 좁은 의미로든 넓은 의미로든 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 삶에서 일요일이란 것이 사라진 느낌이다. 이렇게 단언해도 될까? 모르겠다. 아무튼 현재 나의 상태는 그렇다.
직장인의 생활을 버리고 프리랜서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6년 차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요일에는 일하고 싶지 않다. 하나 지난 일요일 오전에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했다. 새롭게 연락 온 클라이언트와의 첫 작업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올해 들어 정기적인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상이 큰 작업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액수에 비해 요구사항이 많다. 또한, 내가 흥미를 갖고 즐길면서 일할만한 메리트가 있는 작업도 아니었다.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작업해서 보내줬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그건 10년 넘게 쌓인 내 안의 노하우로 처리해 낸 것이지 열정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열정?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것이 사라진 상태로 살아온 지 오래된 것 같다. 우연하게 타국에서 아내를 만난 뒤로는 내 삶은 열정이 아닌 생존과 진화에 포커스를 맞추어 움직여왔다. 그 때문에 나의 일요일은 많은 이유로 빈번하게 더럽혀져 왔다. 그것이 자의였든 타의였든 요즘 들어 나는 하루를 온전히 휴식을 취한 적이 없다. 유미에게 림프관종 문제가 다시 불거진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이번 주말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눈물 나게 고맙게도 요 며칠 사이에 유미의 혹은 다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나와 아내 둘 다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근까지 미래지향적으로 행복했던 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유미의 목에 혹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그래서 매우 행복했던, 8월 초까지의 그 일상 말이다. 그런데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다. 매우 실패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데 왜 우리는 자꾸 칼로 물을 베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는 멍청하게도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큰 다툼을 벌이고 말았다. 제삼자들에겐 별 것 아니지만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그런 문제들로 말이다.
우리 부부의 다툼 중 가장 빈번하게 다뤄지는 주제는 육아에 대한 관점과 그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내 입장에선 아내는 너무 극성맞고, 아내 입장에선 내가 너무 무심하다. 유미가 태어난 뒤로 내가 아내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Please, Listen to me일 것이고 그녀가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은 No, I don't want 그리고 Don't do that일 것이다. 그리고 난 이것이 심하게 반복된다고 느껴질 때 화를 내게 되며 그 텀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물론 내가 화를 내면 그녀는 항상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지만 언제나 자기변명이 섞여있는 상태로 내게 전달된다. 그리고 결국 난 그녀의 생각을 따르게 된 채로 찝찝하게 일이 마무리가 된다. 우린 또다시 같은 이유로 싸우겠단 생각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주말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도치 않게 찝찝하게 보내버린 주중의 기분을 이번 주말에 꼭 씻어내고 싶었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앉아 처리해야 할 일들을 끝내고 나니 오후 1시가 되었다. 즉시, 나는 아내에게 오늘은 외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저질러버린 실수에 나 역시도 어느 정도는 담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었기에 내 제안은 일종의 사과의 의미이기도 했다. 숯불에 구운 고기를 즐기는 아내는 최근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삼겹살집을 가보고 싶어 했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요즘 들어 우리는 너무 집에서만 머무는 경향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내는 내 마음을 읽고 흔쾌히 찬성했다. 방문해 보니 우리는 그 삼겹살집은 매우 맘에 들었다. 슬리퍼를 찍찍 끄는 것과 함께 유모차도 끌고 맘 편히 가서 고기를 먹고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최근에 힘들었던 우리의 기분은 한순간에 다시 좋아졌다. 내 아이를 보며 자기 아이처럼 귀여워해주는 옆테이블 손님도 만날 수 있었기에 아주 우울했던 요즘의 기분이 사라졌었다. 그래서 원래는 구워주는 고깃집이지만 우리가 직접 구워 먹겠다고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사장님께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집에 오는 길에 우리는 놀이터에 들러 처음으로 유미에게 야외에서의 자유를 주었다. 유미는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놀이터를 자기 두 발로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우린 기분 좋은 일요일 오후를 보냈다.
월요일이 되어서도 난 이 기분을 이어가고 싶었다. 달력으로는 월요일이 되었어도 일요일 오전 전부를 생업에 소모하였기에 내게는 아직 일요일이었다. 마침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월요일 오전 또다시 외출을 하였다. 다음 달에 처음 맞이하게 될 유미의 생일을 위해서였다. 무인 아동복 샵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쇼핑을 한 뒤, 방콕에서 동거하던 추억을 되살려 근처 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호수공원을 조금 산책하고 더워지기 전에 다시 집에 돌아와서 우린 가족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모든 것이 망가졌다. 유미에게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유미는 아내가 분유를 타는 동안에 바지를 붙잡고 장난치다가 카페장 모서리로 넘어졌다. 그것도 내가 지켜보고 있던 상황에서 말이다. 너무 놀라 우는 아이를 달래며 확인해 보니 오른쪽 눈꺼풀 위가 1cm 미만으로 작게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내 아이가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마주한 그 순간 난 급히 소리쳤다.
"빨리 밴드 가져와!"
나는 상처 부위 위로 일단 밴드를 붙여 출혈을 막아두고 아이를 급히 안은 뒤 나가면서 아내에게 병원 갈 준비한 뒤 뒤따라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나 먼저 급히 나왔지만 막막했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부터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그 빌어먹을 소아과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다니며 눈에 익혀두었던 24시간 의원으로 갔다. 그곳은 최근에 생긴 곳 같았고 야간진료를 강조하는 문구를 써두며 홍보를 하고 있었다. 건물 밖 간판 불이 밝게 들어와 있었기에 안심하며 빠른 걸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5층에 위치한 곳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5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탄식했다. 내부가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아직 오픈하지 않은 의원이었다.
"아 간판 불은 왜 켜두고 지랄이야!"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그렇게 혼잣말을 외친 뒤, 바로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약국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메시지를 보낸 뒤 유미의 상처를 약사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내 온몸은 식은땀으로 온통 젖어있는 상태로 물었다.
"조금 전에 아이가 이렇게 다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건 바로 응급실로 가시는 것이 좋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가기 전에 상처에 필요한 약들을 미리 구매할 수 있을까요?"
"일단 의사에게 먼저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약국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 응급실은 택시로 15분쯤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퇴근시간대였다. 그래서 당장 응급실 도착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랐기에 상처에 필요한 약을 미리 구매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약사가 저리 말하니 내 생각을 계속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아내를 빨리 만나 택시를 잡은 뒤 바로 응급실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 거지 같은 소리들을 듣게 되었다.
"상처를 꿰매야 하는데 파업 때문에 현재 여기에 성형외과 의사가 없어요. 일단 119에 연락해 보세요."
응급실에 왔는데 119에 연락해 보란 소릴 들을 줄은 정말 몰랐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도저히 글로는 쓸 수가 없는 (동시에 매우 쓰고 싶은) 수많은 욕설을 속으로 쏟아냈다. 그리고 다시 차분히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는 이해하겠는데 일단 아이 상처를 의사에게 한번 보여줄 수 있을까요?"
응급실까지 왔는데 그냥 이렇게 비참하게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간호사는 내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마침 우리 곁을 지나가는 의사에게 아이의 상처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 의사의 소견은 이랬다.
"이건 꿰매야 해요. 현재 성형외과 의사가 없어서 이곳에서는 할 수 없지만 24시간 내로 꿰매면 괜찮아요. 아이가 다친 장소가 더러운 곳은 아니었으니 파상풍이 걱정되지는 않는 상황이에요. 지금 당장 꿰매고 싶다면 서울로 가셔야 할 거예요. 그러니 오늘은 일단 소독이랑 응급처치 잘해두고 내일 성형외과에 방문하시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럼 일단 여기에서 응급처치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이곳에서 할 수 있기는 한데 그럼 비용이 10만 원 정도는 나오신다는 것은 감안하셔야 해요."
정말 망치로 세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런 진부한 문장이 온몸에 진하게 스며드는 기분은 내 인생에 있어 처음이었다. 뭐? 10만 원? 알코올소독 한 뒤 연고 발라 밴드 붙이는 작업이 10만 원? 응급실이 이런 소릴 한다고? 난 누가 봐도 상관없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말씀드리면 일단 약국에 가셔서 알코올솜이랑..."
이봐, 내가 지금 약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거기에서 여길 가라고 했단 말이야.라고 거의 입 밖으로 내뱉었지만 소리를 내진 않았다. 아니, 소리를 낼 수 없었다. 10만 원 소리 한방에 정말 온몸에 힘이 빠진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그래, 까놓고 말해보자. 한 달 전, 유미 혹이 재발하여 이곳을 찾았을 땐 일단 우선은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수액을 맞혔고, 해열제와 항생제를 처방받았으며, 아이의 증상 원인을 찾기 위해 소변검사, 피검사 모두 진행했었다. 거기에 더해서 혹시 모르니 X-Ray 촬영까지 했었다. 당시 응급실 경험은 처음이었고, 실손보험금청구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 때문에 관련서류비용까지 들었는데 그것들까지 다 포함을 해도 총 3만 원이 넘지 않았었다. 그 때문에 기준액 미만으로 보험금 지급은 거절당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양반은 양호실에서도 그냥 해주는 행위에 10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붙였다. 그래, 못 낼 것도 없다. 근데 싫었다. 당장 아이가 아픈데 그 돈이 아깝냐고? 아니, 지금 이건 어떤 이유에서든 절대로 옳지 않으니까 싫은 거다. 난 그 의사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그냥 아내에게 나가자고 했다. 카카오 택시 도착지를 아까는 출발지였던 그곳으로 찍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왕복택시비 3만 원을 공중분해하며 허무하게 다시 아까 그 약국으로 돌아왔고 약사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고 소독제와 면봉, 상처용 연고, 그리고 각 사이즈별 응급밴드를 구입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고가 발생하고 수많은 감정을 거친 뒤 약 2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약사의 손도 의사의 손이 아닌 우리 부부의 손으로 말이다. 상처부위 소독해 주고, 연고를 살살 발라준 뒤, 응급밴드를 알맞게 잘라 그 위에 붙여주는 것. 이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나 싶다. 정말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의 이번 일요일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영화의 엔딩 씬 대사가 생각났다. 어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일지도 모르겠다.
The world will break your heart ten ways to Sunday,
that’s guaranteed.
And I can’t begin to explain that or the craziness inside myself and
everybody else
세상은 일요일까지 수많은 방법으로 당신의 마음을 무너뜨릴 거야.
그건 확실해.
난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광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제저녁 처음으로 피를 흘리는 유미의 얼굴을 보았을 때 정말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수면부족으로 뻑뻑한 상태일 정도로 밤잠을 설쳤다. 정말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내 머리와 심장을 꼬리 물어 줄지어 관통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지금껏 나를 키워오면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너 처음으로 넘어져서 계단에 얼굴 찍혔을 때 엄마는 진짜 짜증 나서 죽는 줄 알았어."
엄마가 늘 내게 말해왔던 '그 짜증'을 난 어제 고스란히 다 느껴볼 수 있었다. 그런데 눈물은 나지 않는다.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기분이 몇 번 찾아오긴 했지만 금방 삼켜내며 오히려 웃음이 난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내 아이의 사고를 막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헛웃음이 나고, 응급처치에 10만 원이라는 가격표부터 들이댄 응급실 그 의사에겐 비웃음이 나며, 혼돈에 빠진 채 일단 유미를 안고 집밖으로 급히 나갔을 때 밤의 바깥풍경을 신기해하며 까르르 내 품 안에서 웃어대던 유미의 그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엄마와 아빠의 심장이 쥐어뜯길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유미는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조차 잊었는지 여기저기 이동하는 내내 기분 좋다고 웃으며 야경의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는 말에 따르면 어제의 난 삼류였고 내 아이가 일류였다. 아무도 웃지 못할 상황 속에서 다친 내 아이만 날 보며 웃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오늘 성형외과에 가지 않았다. 상처소독에 10만 원을 얘기한 응급실의 그 의사양반은 꿰매야 한다고 했으나 나와 아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의 상황을 각자의 엄마에게 공유했고 꿰매지 말라는 답을 받았다. 어차피 상처는 아물 것이다. 얼굴에 흉이 남을 수도 있다고? 꿰맨 자국도 남는다. 마취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더 싫고, 또 다른 의사를 다른 이유로 몇 번이나 더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싫다. 솔직히 말해서... 적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말이 너무 심하다고? 최소한 아군은 아니다. That's guaranteed. 그들은 10만 원으로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을 시험하려 했다.
영화의 다음 대사는 이러하다.
but guess what? Sunday is my favorite day again.
I think of everything everyone did for me and I feel like...
a very lucky guy.
근데 그거 알아? 일요일은 다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야.
모두가 날 위해 해준 모든 일을 생각하면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정리된 생각들을 돌이켜보면, 어제 응급실을 오가며 쓴 택시비 3만 원은 헛돈을 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덕분에 내 딸이 일류였음을 알 수 있었으며 동시에 난 이렇게 글감을 얻었으니 말이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나마 웃을 수 있어 다행이다. 일류는 아니더라도 삼류아빠는 아니라고 말할 정도는 되는 기분이다. 어제 모두가 날 위해 해준 모든 일을 생각하면 난... 어째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