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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에버 Aug 29. 2024

느려도 원하는대로

Walking Walking

10개월이 된 유미는 이제 거의 걸을 준비가 다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빠를 처음 마주했을 때, 환히 웃으며 몸을 뒤집고 통통하지만 가냘픈 두 다리로 제법 익숙하게 몸을 일으켜 세워 아장아장 걸어온다. 그리고 내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마치 안아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그럼 그 작은 몸통을 겨드랑이 밑으로 양손으로 잡고 들어 올린 뒤 내 왼쪽 어깨에 유미를 얹힌다. 그럼 유미는 신이 난 듯이 까르르 웃으며 몸과 다리를 앞뒤로 버둥대며 스윙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우리 집 부녀의 첫 아침인사다. 매일 이 기분을 느끼고 싶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아이의 기상시간에 맞추어 기상하고 있다.


그렇게 유미는 내 품 안에서 호기심 가득한 두 눈으로 또 다른 재밌는 것을 살피기 위해 다시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내 눈에 유미 오른쪽 턱 밑의 혹이 다시 눈에 띄고 오늘은 더 커졌나 작아졌나 유심히 살펴본다. 지금은 어느 정도 턱선이 살아나긴 했지만 혹이 좀 더 아래로 이동을 했을 뿐이고 크기가 더 작아진 것 같진 않다.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살짝 혹 위로 키스를 해줬을 때 확실히 신생아 때보다 딱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이 여러 개가 있다고 하니 더욱더 신경이 쓰인다. 좋았던 기분이 다시 침울해지기 시작한다. 그 기분과 동시에 몸에 힘이 떨어지는 것 같아 유미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렇게 베이비룸 바깥으로 나온 유미에겐 가장 큰 자유가 주어졌다. 


우리 부부는 유미를 위해 거실과 주방 사이 테이블 구조를 조금 변경하여 유미에게 더 많은 공간을 주었다. 약간의 노력으로 우리 딸에게 넓은 놀이공간이 생겨 맘에 들었다. 이제 유미는 더 넓어진 거실에서 며칠 전과 다르게 더 많이 걸으려고 노력한다. 전엔 7:3의 비율로 기어 다니기와 걸어 다니기를 혼합했다면 지금은 4:6의 비율로 변경된 것 같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다시 바로 일어나고... 의외로 빠른 그 모습이 너무 웃겨 영상까지 찍어뒀다. 정말 신기했다. 안 힘든가?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며 유미는 본인의 얼굴이 보이는 거울 앞까지 기어가지 않고 걸어갔다.


최근 베이비룸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허락하게 한 뒤로, 유미는 항상 전자레인지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벽을 잡고 일어서서 그 앞에서 놀았다. 왜 하필 그곳일까 하는 생각에 유심히 관찰해 보니 그곳이 본인 키높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지레인지 문이 유광이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으니까. 그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쿠팡으로 아크릴 거울 5장을 주문한 뒤 안전한 공간 쪽으로 이어 붙여줬다. 유미가 걸어서 도착한 곳이 바로 이 앞이다. 유미의 키 높이에 맞추어 붙여줬기에 이제 이곳이 유미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곳까지 기어가지 않고 걸어가려고 노력한 것이 참으로 기특했다. 아빠가 너였다면 굴러서 갔을 텐데...


전자레인지 문보다 훨씬 선명하게 비춰주는 거울 앞에서, 유미는 양손으로 벽을 짚고 몸을 흔들어대며 또다시 까르르 대며 웃는다. 동시에 양다리는 나름의 스쾃 하는 것 마냥 위아래로 빠르게 바운스를 준다. 다시 부풀어 오른 혹으로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그저 좋다고 본인의 얼굴을 보며 마냥 웃어댄다. 그 사이에 그녀의 뒤로 다가가 휙! 까꿍을 외쳐주면 유미는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또다시 웃는다. 거울을 통해서 부녀가 서로의 얼굴을 쉽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난 그렇게 유미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유미는 과도하게 목을 들어올리지 않아도 되며, 내 시선에서는 그 자세가 유미의 혹이 가장 안 보이는 모습이다. 잠깐이지만 또 눈물이 핑 돌았다. 이곳까지 '걸어서 온' 내 아이가 너무 기특했으니까.


존경하는 하정훈 박사님 말로는 아이는 부모의 생활에 끼고 싶어 하며 자란다고 했다. 그렇게 부모의 모든 것을 배울려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자신만 기어 다니는 것이 싫었나 보다. 매일 보는 엄마와 아빠처럼 본인도 두 발로 걷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하루빨리 엄마와 아빠처럼 생활하고 싶었나 보다. 그랬기에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본인에게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닌 본인이 가장 이루고 싶은 방법을 통해 가고자 노력했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해냈다. 나는 그게 참 기특했다. 나도 저 땐 그랬을까? 앞으로 부모로서 살아가야 할 방식을 내 아이가 가르쳐 준 것 같았다. 요즘 난 조급함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조급하게 당장 신발을 사줘야겠단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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