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Heavy
그야말로 한방 제대로 먹은 하루였던 것 같다. 어디서부터 삐걱거렸는지 모르겠지만 하루의 끝을 진한 찝찝함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어젠 유미 목에 다시 자라난 혹을 알아보기 위해 초음파 사진을 다시 찍는 날이었다. 아무 일이 없었다면 아내가 다니는 교회의 자매님들 도움으로 차량 지원을 받아 편히 갈 수 있었겠지만, 하필이면 주차장 50%를 이용할 수 없다면서 대중교통 이용을 권유하는 문자가 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냥 전철을 타고 이동했다.
다행히도 덥지는 않은 날씨였다. 8월의 끝자락임에도 내리쬐는 땡볕이 이제는 내가 어린 시절 느끼던 한국의 여름이 아닌 것 같다. 2주 간 의사의 처방대로 항생제를 아침저녁으로 먹여보았지만 유미의 혹은 기대만큼 작아지진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유미는 아파하지 않고 웃으면서 잘 먹고 잘 놀고 있다. 아내의 말로는 예전보다 딱딱해졌다는 것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다. 육안으로도 그렇게 느껴진 것을 애써 외면했는데 그걸 다시 아내 입을 통해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1시에 병원을 도착을 했고 예약은 2시에 초음파 촬영 3시에 진료로 잡혀 있었다. 일단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아내와 유미의 식사가 우선이었기에 서둘러 푸드코트로 가서 주문을 하게끔 했고 그사이 난 접수부터 서둘러서 끝내고 돌아왔다. 우린 30분 만에 식사를 끝내고 바로 초음파실 앞으로 이동해서 대기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 순번은 빨리 돌아왔다.
"아이고 젤을 듬뿍 발라야겠네요."
초음파 촬영을 하는 의사가 혼잣말로 저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혹이 큰가 보다... 하...'
촬영 중 유미의 버둥거림을 막기 위해 그 작은 머리를 꽉 잡은 채 들었던 생각이다. 유미는 아기의 발음으로 엄마를 찾으면서 엉엉 울어댔다. 그렇게 촬영은 순식간에 끝났고 바로 진료실 앞으로 옮겨서 대기했다. 그리고 드디어 유미의 병명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보시면 혹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입니다. 다발성이라고 하고 이런 증상으로 보면 림프관종인 것 같습니다."
드디어 무엇인지 알게 되어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됨과 동시에 다발성 얘기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냐하면 신생아 때 찍은 초음파 상으로는 없던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림과 달라졌기에, 끔찍하게도 내 아이의 목이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게 악성종양은 아닙니다. 서둘러야 하거나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이건 수술을 하던가 주사를 놔야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주사다. 왜냐하면 의사가 수술을 해도 재발하기도 하다는 얘길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내 아이의 몸에 그 어떤 칼질도 허용하고 싶지 않다. 작년에 전치태반을 이유로 아내는 제왕절개가 필수라는 얘길 들었을 때도 가슴이 한번 무너졌었다. 항상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그녀에게 제왕절개를 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되면 병원에서 입원을 더 길게 해야 되었기에 그게 참 싫었다. 그러니 이런 우리가 어떻게 수술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일단 주사만으로 유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든 모든 의사가 한결같이 물이 차 있는 것이라고 했으며 이는 필리핀 의사의 말대로 자라면서 체내흡수하며 자연치유의 가능성도 믿어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미는 몇 주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일 정도로 혹의 크기가 줄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 다시 커져버린지 그 이유도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집에서 무기력한 기분으로 글을 이어가기 싫어 집 근처 카페로 옮겼는데 오늘 길 땡볕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이 시기에 이런 날씨라니... 어렸을 적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가? 아무튼, 유미의 병명은 알게 되었다. 림프관종에 대해 검색해 보니 의사의 말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병은 아니라고 한다. 환자의 90%가 생후 1년 이내에 발견된다고 하니 알 수 없는 희귀한 무언가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을 거슬리게 하는 한 문장이 있다.
"림프관종이 목에 생기면 낭종이 커지면서 호흡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유미의 현 상황이 그렇다. 물론, 지금 숨 쉬는 것을 힘들어한다거나 하지는 않다. 그러나 완벽하게 체크메이트에 걸렸다. 앞으로 강하게 신경 쓰며 지켜보아야 한다. 신경을 스위치로 켜고 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아내는 유미가 가끔 그르렁 거리며 내는 소리의 원인을 목에 난 혹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모든 것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심리라는 것이 강하게 이해된다.
내 하루의 전부가 여기까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기가 시작이었다. 일단, 유미 치료의 다음 단계는
MRI촬영을 하는 것이었고 우리는 유미의 돌이 지난 뒤인 10월 중으로 진행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의사는 그렇게 하자고 했고 MRI 촬영 예약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그전에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한 진단서를 요청했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진료시간에 비해 서류작성 시간이 더 긴 것은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다. 아무튼, MRI 촬영 예약은 수납처에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예악이 꽉 차서 가장 빠른 날짜는 12월 3일이네요."
정말 당황스러웠다.
"평소에도 이 정도인가요?"
"아뇨, 유난히 몰렸네요."
아마 의료파업과 연관이 있나 싶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12월 3일로 예약을 잡았다. 문제는 우리 가족의 연간 일정 중 하나는 12월 4일에 필리핀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미 항공권 예매를 해두었다. 그런데 꼼짝없이 취소를 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취소할까 말까 굉장히 고민했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가져가고 싶어서 일부러 취소를 안 하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 유미가 다시 괜찮아질지도 모르니까 그렇다. 그런데 말짱 꽝이다.
일단 아내와 동행해 주신 교회 자매님들께 전체적은 상황을 브리핑했다. 다음 방문은 12월이 될 것 같다는 것과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일단 기존 예약의 취소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병원 측에 연락 달라고 하세요."
좋은 생각인 것 같아서 자매님의 조언대로 병원 측에 부탁하고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보험금 청구를 위한 서류들 사진을 찍어 보냈고 기존에 예약되어 있던 필리핀행 항공권 취소를 진행했다. 취소사유로 질병에 관련한 사유를 전달할 수 있었고 진단서, 여권사진을 찍어 보내게끔 되어 있었다. 응? 여권? 집에 가서 취소해야겠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즉시 여권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내 것뿐만이 아니라 아내의 필리핀 여권 그리고 유미의 한국&필리핀 여권 전부 다 보이지 않는다. 내 방의 물건들을 샅샅이 꺼내어 상태를 난장판으로 만들 때까지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왜지? 왜 안 보이지?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완전히 패닉이 온 상태로 엉뚱한 곳까지 샅샅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집상태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것을 아내가 볼 수 없었는지 왜 그런 곳을 찾느냐면서 웃었고, 순간 나는 그것이 비웃음으로 느껴졌는지 짜증으로 답했다. 내 목소리가 순간 커져 놀란 유미는 울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클라이언트의 메시지가 왔다. 병원 일로 작업을 못하는 날이라고 사전에 얘기를 해뒀는데 캘린더 확인을 못했다면서 내 작업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혼돈의 상황에서 최대한 정중한 문장을 만들어 바로 오해를 푼 뒤 난 담배를 참을 수가 없었기에 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머리가 매우 무거운 상태다. 그걸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이렇게 글로써 배설한다.
머리가 매우 무겁다. 이게 지금 내 상태다. 아내의 임신으로 인해 작년부터 엉뚱하게도 불어버린 내 몸뚱이보다도 무겁게 느껴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유미의 혹이 재발하기 직전인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고작 여권 하나에 내 상태가 무너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고 있다. 정말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재미없는 상태, 그러나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태. 내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리운 상태. 내 아이를 위한 우선순위를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 하는 상태. 어깨만 무거우면 좋겠지만 머리까지 무거워진 상태.
정말 울고 싶다.
근데 이미 말라버렸는지 나오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