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만 아팠으면 좋겠다
"오빠, 유미가 이상해. 갑자기 또 열이 나고 턱밑이 다시 부어올랐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내가 내게 인사 대신 한 얘기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가슴은 철렁했다. 열이 난 것 때문이 아니라 턱밑이 다시 부어올랐다고 해서 그렇다. 왜냐하면 유미는 10개월 전에 혹을 달고 태어난 아이이기 때문이다.
작년 10월에 유미를 출산한 직후, 아내가 제왕절개 회복을 위한 입원중일 때, 유미 오른쪽 턱밑에 물혹이 발견되었다고 의사를 통해 얘기를 들었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새열낭종이나 림프종이 의심된다고 하면서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어렵게 첫아이를 얻은 우리 부부에겐 탄생의 기쁨이 막 시작되려고 하는데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바로 떨어진 것이었다. 당시 아내는 정말 서럽게 며칠 밤을 울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 마음을 구슬프게 하는 말을 읊었었다.
"나 정말 열심히 했는데..."
아내는 본인의 월경이 멈추었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부터 엄마가 된 여자였다. 엽산 및 영양제 먹는 것 하나하나까지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본인이 계획한대로 달력에 체크해가며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었다. 그저 임기응변에만 의지하며 단 한번도 초기계획대로 끝까지 실천해본 적이 없는 나에겐 경이로운 여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바로 대학병원 예약을 잡았고 가장 빠른 날짜는 3주 뒤였다. 그 3주간 나는 막 태어난 내 새끼의 걱정으로 거의 잠을 못 잤다. 산부인과 의사가 새열낭종일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기에 그에 관련한 정보는 한도 내로 싸그리 읽어버렸지만 불안함은 전혀 가시지 않았으며, 시간은 정말로 느리게 갔었다. 그리고 당시 나는 정말 수많은 미래를 상상했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못하니 일단 3개월 지켜봅시다."
기쁨보다 걱정이 더 가득했던 힘든 3주를 보내고 받은 대학병원의 답변이었다. 이게 제일 싫었던 미래다. 머리로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으나 가슴으로는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애초에 난 무언가 다른 답을 기대하고 온 사람인데 이걸 과연 누가 좋아할까? 3개월 더 불안하란 말. 물론, 새열낭종은 아닌 것 같단 말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최근까지 유미는 매우 건강했다. 너무나 감사할 정도였다. 누가 들어도 엄마를 부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발음을 하고 있고, 아빠는 조금 부족해도 날 울릴 정도는 되는 웃으며 소리를 내어주면서 예쁘게 자랐다. 지옥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3개월은 오히려 꽃밭과도 같았던 미래로 흘러갔다. 우리는 올해 3월, 필리핀 처가를 방문하여 예년처럼 한달간 보내고 왔다. 그 기간 중에 나와 아내는 유미를 필리핀 병원으로 데려갔다. 아내가 원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유미가 병원에 가야하는 날, 나는 일로 바빠서 동행하지 못하였지만 아내가 처제와 같이 방문 후 돌아와서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오빠, 여기 의사가 말하기를 유미 턱밑에 난 혹은 물이 찬 것으로 보인대. 조금 만져보더니 말랑한 걸 보니깐 심각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자라면서 체내로 흡수하며 작아질테니 잘 지켜보고 더 커지면 문제가 있는 것이니까 그때 다시 병원에 찾아가보래."
이 얘기를 평정심 속에서 얘기하는 아내를 보면서 내용을 듣는 나도 안심이 되었다. 아내가 정말로 안심을 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직접 낳지 않은 나도 정말 숨막혀 죽을 것 같은 시간이었는데 아내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그 이후로 유미는 필리핀 의사 말대로 턱밑의 혹이 점점 작아지며 커갔고, 한동안 우리 부부는 그 혹의 존재를 거의 잊고 사실상 완치라고 판단하며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혹이 다시 커진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가슴이 철렁 안할 수가 있나? 일요일 아침에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바로 난 집 근처 소아과 예약을 잡았다. 주말이기에 과연 문을 연 병원이 있을까 싶었으나 다행히 존재했다. 소아과 부족에 관련한 최근 사회문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에 난 똑닥앱을 이용하여 오전 9시 10분의 예약가능시간이 열리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고 순번 28번을 받았다. 공지사항에 주말엔 1분만에 마감이 된다고 해서 정말 떨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시간 가까이 기다려 오전 11시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병원을 대기하는 시간동안 난 유미의 상태가 볼거리일 것이라 추측했다. 왜냐하면 볼거리 백신은 돌이 지나서 맞을 수 있었기에 혹시라도 유미에게 그러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전에 유미는 턱밑에 혹이 있어도 아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열을 동반한 것과 동시에 통증이 있는지 유미는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렇기에 전에 존재하던 혹과는 다른 무엇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래서 병원 예약도 '볼거리 의심'이라 적어서 잡았었다. 그런데
"어머, 혹이 너무 크네요 다른 병원 응급실로 가셔야겠어요. 의뢰서 써 드릴게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시간을 기다려 얻은 첫 답변이 이것이었다. 예상했다. 그래서 바로 알았다고 하고 나왔다.
'근데 어느 병원엘 가야하지?'
소아과 의사가 최근 의사 파업에 관한 부분도 언급하였기에, 그리고 관련 뉴스도 많이 보았기에 정말 막막했다. 그래서 육아선배인 친한 형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119에 문의하면 당장 가능한 병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거란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119에 전화를 걸었더니
"지금 담당자가 바빠서 연결을 못해드리니 번호 남겨주시겠어요? 저희가 연락 드릴게요. 대기해주세요."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내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30분이 지났다.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욕이 나왔다.
'내가 응급실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나?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는거야?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하나?'
결국 다시 전화를 걸어 다시 상황설명을 했다. 그리고 이번엔 기다리란 얘기 없이 바로 담당자로 연결을 해주었고 가능한 병원에 대한 관련 정보를 문자로 전송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통화를 종료하기 전에 이렇게 물었었다.
"받은 병원의 연락처에 전화하면 될까요?"
"네, 전화하셔서 예약 잡으시고 방문하시면 될 거예요."
그렇게 안내를 받은 나는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바로 가장 가까운 병원의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휴무일이라 연결 할 수 없습니다. 근무시간은 월요일 오전 9시부터..."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병원이 열려있는 것 맞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119에 전화를 걸어 전체적인 상황설명을 다시 하고는 결국엔 그냥 방문하셔도 될 거라는 답을 받았다. 정말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며 따지고 싶었지만 아이가 먼저였기에 난 바로 택시를 불러 가장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유미의 상태를 본 의사는 나와 같이 볼거리를 의심했으며 이곳에서 조치할 프로세스에 대한 브리핑을 간략히 전해 들었다. CT촬영을 하면 정확하겠지만 이곳에서는 (못알아들을) 어떠한 이유로 할 수 없단 얘기를 들었고, 간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소변과 피검사, 그리고 X레이 촬영을 해보겠다고 했다. 동시에 유미의 열을 떨어뜨리는 것이 우선이라 유미는 수액을 맞고 해열제를 먹으며 검사결과를 기다렸다. 피검사를 위해 유미의 손목에서 혈액을 뽑아내는(정확히는 쥐어짜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돌멩이같은 것이 있나싶어 X레이를 찍어봤는데 그런 건 안보입니다. 그리고 아밀라아제 수치는 정상입니다."
부어오른 부분 내에 특별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기에 다행이다 싶었으나, 나와 의사가 예상했던 '볼거리(이하선염)'도 아닌 것 같단 얘기였다. 침샘과 관련이 있는 병이라 아밀라아제 수치가 높게 나와야 볼거리로 의심할 수 있었다.
"일단 이곳에서는 열을 내리는 조치가 전부인 것 같고 다른 병원에 정식적으로 방문해서 진료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엔 도돌이표가 되었다. 유미의 증상에 대한 원인은 아직까지도 모르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또 다른 병원을 알아보아야 했다. 최근까지 점점 작아지며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아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유미의 혹은 이렇게 다시 커졌다. 이전과는 다르게 통증을 수반한 상황이니 전의 혹과 지금의 혹이 같은 혹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이전보다 더 커진 것 같단 생각이다. 힘들게 응급실까지 왔는데도 아무런 결론이 나질 않으니 이제 어딜 가야하나 싶기도 하다. 더이상 답없는 뺑뺑이를 도는 것이 싫어 유명 목종양 전문닥터를 찾아보니 제일 빠른 것이 다음주다. 그런데 어린이 전문병원이라고 해도 딱히 믿음이 가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나는 너무 병원에 대해 지쳐버렸다. 불신이 최고조를 찍고 있다고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난 따를 수 밖에 없다.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산부인과를 다닐 때부터 화가 나는 상황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시간예약을 잡고 갔는데도 순번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는 허다했다. 그들의 지시대로 따르고 있음에도 모든 시간낭비에 대한 리스크는 우리가 지게 된 경우도 많았다. 출산 이후 아내에게 식사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산부인과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모르는 번호로 연락을 받는 경우도 정말 많았고 그들은 전부 신생아 촬영을 홍보하는 스튜디오 스팸 전화들이었다. 분만을 준비하는 내내 페인버스터니 뭐니 이것 사라, 저것 사라 추가옵션에 대한 설명은 지극정성을 다해 하면서, 정작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소홀했던 적도 정말 많이 보았다. 산후조리원을 당연히 이용한다고 가정하며 일이 진행되는 것 또한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1인실을 얻기위한 사람들의 눈치싸움도 정말 많이 불편했다. 그래서 우린 산후조리원도 1인실도 죄다 거부하고 하루라도 빨리 아이와 함께 집에 돌아가길 원했었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날 따로 불러내어 내 아이에게 '선천적 문제'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왜 서류상으로는 '정상으로 출산'이 맞다고 그들은 얘기하는 것일까?
대학병원급의 큰 병원은 가고 싶어도 당장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단 '의뢰서'가 필수적이라 동네 의원급에서 진료를 먼저 받은 후 와야한다. 그 '의뢰서'를 얻기 위해서 소아과 오픈런 퀘스트를 필수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을 소모하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대략 3~4시간은 되는 것 같다. '의뢰서'를 얻은 뒤에는 대학병원 진료예약을 잡아야하는데 그 날짜는 아무리 빨라도 2~3주 뒤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심적으로 불안해하며 기다린 뒤 내가 얻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남짓이었다. 그 과정안에서 해당병원 첫방문시 진행해야하는 진료카드 생성과정은 정말 미친듯이 짜증이 났었다. 그렇게 카드까지 만들어서 진료의 기회를 얻었음에도 내가 받은 답변은 "일단 기다려보자"가 전부였다. 산부인과는 산부인과라서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하고, 대학병원은 아이가 아직 너무 어리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나보고 왜 가라고 했으며 왜 오라고 한건가? (산부인과도, 대학병원도) 과연 그들은 내 아이가 갓태어난 신생아라는 것을 몰랐나? 매우 의문이다.
당장 내 아이가 아프니, 절대로 전화하기 싫었던 119에 전화를 걸어 제발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조차 나보고 일단 기다리라고 한다. 30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전화가 없었던 것은 지금도 매우 의문이다. 내게 기다리라고 했던 그 양반은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가능한 병원에 대한 정보는 내가 '2번이나 더' '먼저' 전화를 걸어 얻어낸 것이다. 그들에게도 한번 묻고싶다. 여기가 정말 긴급전화 119 맞나요? 제가 차분히 전화를 걸어서 급해보이지 않았나요?
이 많은 불행 중 다행으로 당장 내일로 다른병원 진료예약을 조금 전에 잡을 수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다음주 목요일밖에 잡을 수 없었는데 우연히 내일 시간대중 빈자리가 하나 났다. 그런데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다. 그냥 내 아이가 아픈 모습을 보기 싫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내도 보기 싫다. 지난주 토요일까지 행복으로 가득찼던 집안의 공기가 이토록 무거워진 것이 매우 짜증나게 싫다. 응급실에서 처방해준 약 해열제가 2종류, 항생제 1종류가 있다. 뭐가 이렇게 많고 복잡한지 모르겠다. 해열제를 왜 다른 종류로 2개씩이나 주어서 각기 다른 시간텀으로 교차복용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으며, 동시에 왜 아침, 점심, 저녁 1일 3회라 적혀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써있는 문장들을 죄다 적용하면 경우의 수가 몇가지나 생기게 되는데 뭘 따르라는 얘기인가? 그래서 그냥 해열제 하나만 열이 38도 이상일 때 먹이고 있다. 그건 이미 응급실 내에서 먹였던 것이니까. 항생제는 일단은 보류중이다. 프랑스에서 육아를 했던 친구의 말로는 한국은 항생제를 너무 쉽게 준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의 혹 하나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지금 내 머릿속엔 이 한문장만 되풀이되고 있다.
'과연 지금 아픈 것은 내 아이뿐인가?'
아무것도 못 믿겠다. 그냥 나만 아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