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브랜드 팬덤, 구축보다 유지가 더 어려운 이유
'팬덤이 없는 브랜드는 성공할 수 없다', '팬덤이 이룬 성과', '1%의 충성 팬덤이 시장 지형을 바꾸는 시대가 도래' 등 브랜드의 팬덤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는 요즘, 팬덤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실제 오늘날 비즈니스 환경에서 팬덤은 기업의 가장 강력한 무형 자산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현업의 냉정한 현실은 다릅니다. 팬덤 구축을 위한 수많은 투자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프로젝트는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중도에 좌초되거나 종료되는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팬덤은 요란하게 태어나고, 조용히 접힙니다. 활발했던 배달의민족의 팬덤 '배짱이(배달의민족을 짱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의 최근 활동소식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배짱이를 확대한 소식지 형태의 뉴스레터 '주간 배짱이'는 2020년부터 꾸준히 발행되며 책까지 묶였지만, 운영 과정에서 코너 개편·시즌 전환·일시 중단(“잠깐 멈춤”) 등의 변곡점을 겪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019년 시작한 고객 소통 플랫폼 H-ear는 약 5년 만인 2024년 7월 1일 종료를 공지하며 정리 수순을 밟았습니다. “고객과 함께 미래차를 만든다”는 취지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패널을 운영했지만, 결국 공식 운영을 멈췄습니다.
수많은 브랜드가 팬덤의 힘을 갈구하고 이를 구축하기 위해 애쓰지만,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 그럴까요? 현업에서 다양한 브랜드 팬덤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실패는 시장의 변화나 외부 경쟁 때문이 아니라, 기업 내부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재무적 정당성 입증의 실패, 전사적 통합 전략의 부재, 그리고 팬덤 활용 목적의 불분명함이라는 세 가지 내부 사정이 프로젝트를 좌초시키는 핵심 요인입니다. 현업에서 브랜드 팬덤 프로젝트가 지속성을 잃고 종료되는 세 가지 핵심 딜레마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비용을 들여 브랜드 팬덤을 운영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얼마나 주나?
자동차용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브랜드 팬덤을 구축할 때 받았던 질문입니다. 새로운 마케팅 임원이 부임하신 후 첫 번째 현황을 파악하는 보고 회의에서였죠. 담당자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브랜드 평판에 도움이 되는..', '지금은 브랜드 팬덤 구축이 중요한 시기...' 등의 답변을 하다 추가로 날아오는 질문에 쩔쩔 매고 말았습니다. 진행하던 팬덤 프로그램은 보고 회의 후 한 달 만에 종료되었습니다.
<필수불가결한 공동체: 왜 어떤 브랜드 커뮤니티는 번성하고 다른 커뮤니티는 사라지는가 (The Indispensable Community: Why Some Brand Communities Thrive When Others Perish)>라는 책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Harley Davidson, Dell과 같은 사례는 브랜드 커뮤니티 구축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지만, 종종 이점은 과장되고 비용은 경시됩니다. 연구를 통해 엄청난 이론적 이점이 나타날 수 있지만, 회계사는 이를 대차대조표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정서적 유대감'이나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 상승' 같은 브랜드 팬덤의 가치는 즉각적인 매출 증가보다 장기적 고객 관계에 있지만, 이를 정량화하기 어려워 CFO를 설득하는 데 실패합니다. 무형의 지표에 의존하여 실제 비즈니스 성과와의 연결고리를 증명하지 못하면, 팬덤 투자 자체가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 결과 경영 환경이 변화하거나 새로운 리더십이 부임했을 때, 팬덤 프로젝트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첫 번째 희생양'이 되는 것입니다.
브랜드 팬덤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형의 팬덤 가치를 명확하게 계량화하여 재무적 가치로 입증하는 프레임워크가 필수적입니다.
브랜드 팬덤이 창출하는 가치를 수익 증대뿐만 아니라 비용 절감 효과로 입증하는 것이 재무팀을 설득하는 핵심 논리입니다. 팬덤을 단순한 마케팅 대상이 아닌, '대차대조표에 반영할 수 있는 비용 절감형 자산'으로 포지셔닝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브랜드 팬덤 활동의 이점 중 '고객 충성도 및 유지 증가, 브랜드 평판 향상'은 '고객 지원 및 구매 비용 감소'로 재무적 환산이 가능합니다. 또한 팬들 간의 정보 교류 활동을 통해 절감된 고객 서비스 인력 비용을 팬덤 투자에 대한 수익으로 계산함으로써, 팬덤의 재무적 기여도를 명확히 입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브랜드 팬덤의 목적 자체를 '팬덤을 활용한 제품 매출 증대'로 설정하고 팬덤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팬덤을 마케팅에 활용하여 매출효과를 얻는 방법이죠. 자세한 내용은 다음 '팬덤 마케팅'편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브랜드 팬덤 구축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성과 측정의 어려움'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피할 수만은 없습니다. '측정할 수 없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케팅의 원칙을 브랜드 팬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구축 계획의 시작 단계부터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저희 팀에 팀장님이 이번에 새로 오셔서요…
유통업계의 브랜드 팬덤을 운영할 때 일입니다. 팬덤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좀 더 확대하려는 시점에 갑자기 전면적인 '일시 중단'이 통지를 받았습니다. 어찌 된 일이냐고 담당자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입니다.
현업에서는 새로운 팀장님이나 리더십이 구성될 경우, 이전 팀에서 추진했던 프로젝트의 성과나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재검토하거나 종료하거나, 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브랜드 팬덤은 단기간에 구축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한 투자와 진정성 있는 소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조직 개편이나 리더십 교체는 팬덤 구축의 흐름을 끊는 주된 요인이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사적 관점에서 통합적 브랜드 팬덤 구축 접근이 필요합니다. 브랜드 팬덤 전략을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인프라'로 인식하고, 부서를 초월하여 통합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리더십의 개인적 판단에 관계없이 유지되는 핵심 기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현업에서 자주 목격되는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각 부서나 팀에서 팬덤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중복적으로 운영하는 경우입니다. 각자 중복된 서비스를 마치 경쟁하듯 운영하다 보면 메시지가 불일치하고 혼선을 야기하며, 결국 전사적 관점에서의 통합적인 브랜드 팬덤 구축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전사적 관점에서의 통합적 브랜드 팬덤 구축 접근이 부재할 때, 오랜 노력으로 쌓아 올린 팬심은 안타깝게도 사내 정치나 단기 성과주의 앞에 쉽게 흔들리고 해체되곤 합니다.
우리 팬덤이 할만한 일은 없을까요? 콘텐츠도 잘 만드는데...
전자제품 제조 회사의 브랜드 팬덤을 구축하고 나서의 일입니다. 몇 달간 팬들을 모집하고 모임도 가졌는데 마땅히 그들과 협업할 거리나 미션을 부여할 활동이 없어서 담당자가 다른 부서에 문의한 질문입니다. 성공적으로 팬덤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디에 활용할지 몰라서' 프로젝트가 종료되는 경우가 세 번째 내부 사정입니다.
많은 브랜드가 "팬덤이 중요하다"는 명제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팬덤을 구축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전략 없이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렵게 형성된 팬덤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결국 방치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플랫폼을 구축하고 팬덤을 모으는 행위 자체를 최종 목표로 착각하는 순간, 팬덤은 목적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는 팬덤 구축을 기획하는 초기 단계부터 팬덤을 어떻게 비즈니스에 활용할지에 대한 목적이 불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즉, 구축 자체가 목적이 되는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 브랜드 팬덤의 목적 설정을 위한 "팬덤이 만들어지면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나요?"는 2화 <브랜드 팬덤의 시작을 위한 5가지 질문>에서 첫 번째 질문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유통 스타트업을 컨설팅했을 때 일입니다. 창업 초기에 열성 고객들을 모아 팬덤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창업자들은 팬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실제로 많은 고객이 참여하여 열띤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팬덤을 단순히 '자사 제품에 긍정적인 이야기만 해주는 집단'으로만 인식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공동 창작에 활용하는 등의 '능동적인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벤트 공지나 신제품 홍보 외에는 이렇다 할 상호작용이 없었고, 결국 팬덤은 서서히 식어가며 활동이 저조해졌습니다. 처음부터 '팬덤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이들을 어떻게 참여시키고, 브랜드의 성장에 기여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과 운영 목적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팬덤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이들을 어떻게 참여시키고, 브랜드의 성장에 기여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 방법은 7화 <팬들과 함께 할 놀동, 준비되었나요?>에서 설명드렸습니다.
브랜드 팬덤의 역할이 명확해지면, 팬덤 활동의 결과가 곧 기업 내부의 비즈니스 성과와 직접 연결될 수 있습니다. 구축 후 팬덤을 '어디에 활용할지 몰라서' 종료되는 상황을 방지하려면, 구축 기획 단부터 팬덤을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깊숙이 통합할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명확히 설정해야 합니다.
브랜드 팬덤은 구축하기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많은 브랜드가 팬덤 구축에 실패하는 것은 팬덤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전략적, 재무적, 조직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브랜드 팬덤 구축은 단순히 고객을 모으는 마케팅 행위가 아니라,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적 자본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통합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마케팅 관점을 넘어 조직 운영과 전사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팬덤은 마케팅 부서만의 책임이 아닌, CEO와 경영진 전체가 고려해야 할 전략적 이슈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부 사정들을 먼저 정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창의적인 팬덤 전략도 실효성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브랜드 책임자들은 이러한 근본적인 내부 사정을 해결함으로써 팬덤을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핵심 자산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브랜드 팬덤 투자가 성공적으로 지속되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