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없는 다시 일상, 고마워

by 벽우 김영래

평소 맑고 따뜻한 이웃처럼 정감 넘치는 풍경. 모래톱 만들어 버드나무 숲을 가꾸고, 여울살에 제 몸 흔들어 은빛 햇살을 반짝이고, 산에서 흘러내린 가장자리 바윗돌을 휘도는 여유로 운치를 더했던 강. 우리 삶을 끌어모아 함께하고자 했던 모든 생명의 원천.


어둠을 틈타 사방에서 몰려든 지원군이 합류하듯 시뻘건 흙탕물이 적군처럼 강으로 휘몰아쳤다. 사자처럼 사납고, 냉혹하게 생명을 삼켰다. 다릿발을 넘는 가득함은 공포 자체였다. 쓰레기는 물론이고 주변 논, 밭을 사정없이 쓸었고, 안타깝게도 몇몇 분들이 희생되었다.


다급했고, 안타까운 13일의 시간이었다.

이른 새벽 전화벨이 울리고 비상소집이 발령되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조차 막혀 고속도로를 타고 우회로를 택했지만 톨게이트로 가는 길도 물이 넘쳐서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렵게 도착한 사무실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평소 인명구조는 주로 구조대원 몫이었지만 긴급한 상황에선 구급대와 진압대를 가릴 겨를이 없었다. 폭주하는 구조요청에 우선순위를 매길 수도 없었다. 단순 고립은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수 백 명이 고립된 캠핑장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가 산사태로 한 분이 희생되었다는 다급한 요청으로 막힌 길을 걸어서 현장에 도착했다. 주택침수 신고가 수시로 접수되었고, 유류탱크가 넘어졌다는 신고에 출동할 차량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관할이 따로 없었다. 제천으로 출동하던 구급차가 침수지역을 통과하다 고립되었고, 펌프차량이 인명구조 도중 차오르는 물을 미쳐 피하지 못했다. 아침이 밝아오고 상황을 정리하던 중 사람이 떠내려간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임무를 마치고 소방서로 돌아오던 구조대가 출동한다는 무전연락을 받았지만 현장 도착까지는 2-30분은 걸리는 시골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사고였지만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혼돈의 수 십 시간이 지나고 수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사람들이 손을 모았지만 비는 무심한 듯 며칠 동안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고, 비 그친 강 위엔 침묵처럼 자욱한 물안개가 두텁게 드리워져 있었다.


휴가는 물론이고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는 평범한 일상이 사라졌다. 휴일도 모두 반납되었다. 실종된 인명을 찾는 일에 모든 업무가 집중되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가족들과 함께 강물을 오르내리며 수색했고, 침수된 소방차를 수리하고 청사와 장비를 정상 가동하기 위해 분주했다. 한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흙탕물이 무섭게 휘몰아치는 그 위에서 작은 고무보트에 의지해 수색하는 일은 극도의 긴장감을 초래했다.

정상 출동 대기 업무부터 임시 상황실 운영에 편성되어 각각의 임무가 부여되었다. 누구 하나 편히 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매일 근무조를 짰다. 물 빠진 모래톱 주변의 도보 수색과 강물을 위에서 바라보는 다리 위 순찰, 드론 수색, 고무보트 수색조 등등

현장에 투입된 대원들이 지쳐갈 때쯤 다행스럽게도 실종된 세 분을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돌아가셨다. 150미터가 넘는 강폭을 가득 채우고 넘쳐 나도록 흘러가는 강물에 휩쓸렸으니... 찾았다고 해서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어는 것이 수난사고 수습의 한계이며, 안타까움이다.



땀에 젖은 몸을 이끌고 물 한 모금과 빵으로 허기를 속이고 돌아오는 길은 늘 헛헛하다. 차창을 열고 바람을 맞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나사 빠진 기계처럼 부조화로 삐걱거리는 듯했고, 허전했고, 안타까웠다.

이부자리에서 1분의 밍그적 거림이 5분의 여유를 잃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음날 다시 그 유혹을 제치지 못하는 제자리걸음 같은 아침. 제시간에 맞춰 내 자리에 앉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란 불에도 앞사람 옷자락 부여잡듯 꼬리물기의 위험한 서커스를 하는 출근길의 조급함, 업무 시작 전 땡볕에서 했던 아침체조 시간도,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없이 쌓여있는 일들도 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평범했던 일상과 그 평범함속에서 가졌던 작은 불평과 귀찮았던 일들조차 그립고 그리웠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정말 고마웠음을 새삼 느꼈다.


어제까지만 해도 헬기 수색에 장애가 되어 민폐처럼 보였던 페러글라이딩이 오늘은 알록달록 무지개색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고 아름다웠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일은 두 얼굴이 된다. 땡볕에 나가던 아침체조 시간과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책상머리에 쳐 박혀 있는 몇몇 일들 이 사실은 내가 기쁘게 맞을 평범한 일상의 다른 얼굴이었다. 일상의 시간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시간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사건 없는 다시 일상,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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