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밭에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에서 꽃내음이 나는 줄 오랜만에 알았다. 보잘것없는 흔한 꽃도 무리 지어 있으니 향기가 제법 진하다. 기차에서 내려 빛바랜 선팅지가 붙은 역사(驛舍)를 빠져나오면 서 열리는 파란 하늘의 작은 광장엔 차들이 가득하다. 길 건너 맞은편엔 아침부터 돈순이 밥집 메뉴 사진의 사실감이 벌써 식욕을 돋운다.
차를 버리고 기차로 출근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 앞의 작은 식당 간판부터 보도블록 사이의 잡초와 시골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몇 걸음을 걷다 보면 본격적인 읍내로 들어선다. 고작해야 3-4층의 건물들이고, 저 멀리 큰 길가 쪽으로 15층 아파트 두어 동이 보이는 게 전부인 읍내는 그야말로 시골의 모습이다. 7-80년대와 현재의 모습이 엉켜있는 듯하다.
몇 걸음 걷다 만나는 것은 버스정류장과 병원이다.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삼삼오오 내리는 정갈한 옷차림새의 허리 굽은 노인들이 바쁘게 종종걸음을 친다. 8시 20분. 이른 시간이지만 밤새 허리, 다리 관절의 고통을 참았던 터라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진료를 받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병원 진료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엄마처럼 아픈 육신을 움켜쥐고 또 마른 밭 귀퉁이에서 잡초와 씨름할 게 분명하다. 건너편 치과 문을 흔드는 할아버지는 열리지 않는 문을 한 번 더 흔들다가 어디 앉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밤새 치통이 심하셨나 보다.
빨간 하트 모양 그림 안에는 명조체의 유려한 글씨체로 “늘 보고 싶다면 그것이 사랑이다”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게 술집에 어울리는 글귀인지는 모르겠으나 참 좋고 맞는 말이긴 하다. ‘사랑’과 ‘술’이 왜 붙어 있어야 하는지 그 역학관계에 의문을 가져 보지만 사람의 일이라 심오하고 단순해서 종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씁쓸하게 웃어 본다. 밤새 유혹으로 휘청됐을 시간을 아침과 함께 굳게 닫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잠들어 있는 호프집을 지났다.
동네 빵집을 밀어버린 대기업의 메이커 빵집은 아침 손길이 분주하다. 길 건너편 공용버스터미널 앞의 택시기사들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담배를 물고 차 먼지를 털고 있다. 아침 햇살에도 등줄기에 땀이 살짝 베어 날 즈음 수건을 목에 두르고 밀짚모자를 쓴 철물점 아저씨가 보도 위로 물건을 진열하며 연신 이마의 땀을 훑어 내고, 그 옆 이발소에서는 천식 걸린 노인의 숨소리처럼 힘겹게 돌고 있는 선풍기가 비누 내와 야릇하고 독특한 냄새를 길 밖으로 토해내고 있다. 보는 이 없는 TV는 웃고, 떠들면서 혼자 놀고 있다. 뱃살 나온 아저씨 같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에 한 귀퉁이가 색이 바래는 낡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걸으며 보이는 가게 안에는 TV가 켜져 있다. 간혹 사람이 있어도 습관처럼 TV를 켜 놓고 스마트 폰 삼매경에 빠져있다.
읍내에 유일하게 있는 신호등 삼거리에는 용궁 다방과 여심 다방이 나란히 붙어 있고, 차를 나르는 아가씨들이 보자기를 들고 바쁘게 움직인다.
푸른 하늘이 준 선물 화원은 문을 일찍 열지 않는다. 다만 창문 가득 경구들을 붙여 놓아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는다. ‘과거란 상관없이 아프긴 하겠지 하지만 둘 중 하나다. 도망치든가 극복하든가’ 또는 ‘행복의 비결, 하루 가운데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이 하나라도 더 많기를 바란다’는 등의 빼곡한 문구. 너무 많아서 오히려 식상해 보이지만 그 하나하나는 맘속 깊이 간직하고 어느 때든 빼내어 되새김해도 좋을 것들이다. 반면 풀잎 향기 화원은 아침 일찍 문을 열고, 화초에도 물을 주어 보도블록이 비가 온 듯 젖어 있다.
읍(邑)의 중심지를 살짝 벗어나면 반듯하게 신축된 대리석 건물의 우체국이 보이고 그 옆엔 대조적으로 빛바래고 페인트가 벗겨진 폐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치킨집을 했었던 것 같다. 유리창엔 치킨 관련 메뉴들이 지나간 시간들의 영화가 부질없다는 듯 먼지를 뒤집어쓰고 세월을 한탄하고 있다.
몇 걸음을 더 걸어가면 빛바랜 간판의 슈퍼 앞 낡은 의자에 앉은 계시던 할머니가 낯선 이방인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나도 인사를 한다. 할머니가 웃으신다.
사무실이 가까워질수록 건물들은 한가해진 대신 새로 지은 집들은 더 많다. 말끔하게 단장된 정원을 품은 성당엔 며칠이 지났지만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고요하고 엄숙하다.
갑자기 커다란 요양병원이 나타난다. 낡음과 늙음의 유사한 음성 차이만큼이나 시간 앞에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는 듯해 쓸쓸하고 우울하고,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왠지 그곳에서는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빨간 플래카드가 반전을 유발한다. 뒷마을에 양계축사가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내용인데 문구가 재미있다. “닭같이 살고 싶지 않다 양계장 결사반대”. 닭처럼 살고 싶지 않은 건지, 닭과 함께 살고 싶지 않은 것인지 해석이 달리 될 수 있다.
사무실이 가까워 온다. 사무실 지나 큰길 건너 중학교가 있는데 그곳에 다니는 녀석인 듯싶다. 준마처럼 펄떡이는 한 달음에 길을 건너 소리치며 달려간다. 앞쪽을 보니 느린 걸음으로 걷는 여학생이 있다.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손을 낚아채듯 잡는다. 한걸음 걷다 뛰며 경쾌한 행복 스텝으로 학교를 간다. 그 녀석의 등 뒤엔 학교야 고마워하는 말이 쓰여 있는 듯하다. 학교가 행복한 곳이었으면.......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웃고 우는 세상사 모든 일에 관해서 일편단심 즐겁게 흥을 돋우는 트로트 가요가 하루 종일 농협마트 광장에 울려 퍼진다. 사무실에서는 음악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가끔은 그 소리를 기차 소리가 덮어 주어 다행이다.
오토바이 수리점 옆을 지날 때면 저거 하나 살까. 자전거를 타 볼까 하는 유혹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1km 남짓 걷는 출근 거리가 좋다. 예전 청주 출장길에 가끔 스쳐 지나가던 거리를 지금은 한 걸음 한걸음 걸으며 가고 있다. 그때는 절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터럭 하나도 다 보인다.
사무실 앞에 다다랐다. 열린 현관문에서 직원들의 두런거리는 수다가 새어 나오고, 등에 땀이 촉촉이 젖을 만큼의 운동으로 좋아진 기분. 밤새 안부를 물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ps : 2016년 충주시 주덕읍으로 출퇴근할 당시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