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윌 대표 Oct 22. 2021

나는 왜 이렇게 어지러울까?

나는 왜 어지러울까? ADHD의 안과, 이비인후과 방문

나는 어지럽다. 아주 자주 어지럽다.


눈앞의 사물이 흐릿하게 보여서 머리를 좌우로 세네 번씩 흔든다. 돋보기안경을 쓴 것 마냥 눈을 깜박깜박 거리기도 한다.


가끔 사람이 많은 거리에 발을 디딘 것뿐인데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헤롱헤롱 거리다 길거리에 눕게 된다.


덜컹거리는 택시를 타면 구역질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빼곡한 글자를 보면 숨이 쉬어지지 않고, 풀리지 않는 비밀번호를 풀다 보면 짜증이 차올라 주먹으로 노트북을 부수고 싶어 진다.


일반적인 증상은 아니기에 걱정이 앞섰다. ADHD 약을 먹는데도 왜 그러는 거지?


그래서 안과에 먼저 갔다.


주변 사물이나 사람들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해서다.


시력이 마이너스여서 아닐까, 근시일까 난시일까, 라식을 하면 어지럼증이 사라질까...


온갖 시나리오를 준비해 갔는데 눈은 안경을 안 써도 될 정도로 괜찮았다.


"눈은 그렇게 안 나쁘네요? 어지럼증은 대부분 이비인후과 증상입니다. 한번 가보셔요."


다음날 이비인후과에 갔다.


기관지가 안 좋았다. 어릴 땐 천식, 커서는 비염으로 수술까지 했다.


‘이것 때문에 ADHD가 생긴 걸까?’ 생각하며 용산의 한 파란 병원 입구를 들어섰다.


작은 의원 같은 분위기의 내부에서는 한 할머니가 간호사와 여담을 나누고 계셨다.


“요즘에는 시대가 바뀌어서 다들 온라인으로도 하더라고.”


“그러게요. 할머님도 전화 말고 온라인으로 예약 한번 해보세요.”


간호사가 손님과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정이 서울에도 남아있었던가...라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잡생각을 했다.


이런 잡생각도 집중력 조절의 어려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고깃집을 가면 힘들다. 옆 테이블, 뒤 테이블, 앞 테이블 대화 내용이 다 들리고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옆 테이블에서 웃긴 이야기라도 들으면 혼자 실실 웃는다.


어쨌든 다시 이비인후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렇게 20여분이 지나고 나의 차례가 호명됐다.


이날 작은 키에 안경을 쓴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나의 상태를 봐주셨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딴생각 삼매경에 빠졌다.


“예전에 만화에서 본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여기 앉아봐라, 저기 앉아봐라” 하시면서 나의 귀를 썩션 해주시고, 증상을 하나하나 살펴봐주셨다.


그리고는 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가 있네."


“이렇게 하면 어때? 어지럽나?”


“자, 여기 그 세 고리관이라고 달팽이관 옆에 보이지? 지금 거기에 염증이 생긴 거야”


우리 몸의 균형과 평형감각을 잡아주는 전정기관의 오류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정기능에 이상이 발생하면 어지러움을 동반하고 균형감각을 잃어 움직임에 제약을 받게 된다고 한다.


또 가끔 글씨가 빼곡한 팸플릿이나 엑셀 시트를 보면 구역질이 나왔는데 그것 또한 전정기능 이상으로 인한 초점 및 균형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다.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고 흐릿한 상태의 사람들로 고통받았던 지난 세월이, 나쁜 시력 때문이 아닌 귀 안쪽에 위치한 전정기관 때문이었다는 희소식이었다.


문제를 인식했으니 고칠 수 있을까? 또 그런 희망을 품었다.


그러니까 이날 나는 전정신경염을 진단받았다.


최근 다이어트를 한다고 복싱을 시작하고 일주일에 5kg를 뺐는데, 이 때문에 급격히 안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이 놈의 전정기능 이상이 ADHD를 유발한 걸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찾아봤다.


그랬더니 ADHD 환자들이 사실 ADHD가 아닌 SPD, 즉 감각 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 선생이 '왜 이 아이는 ADHD도 아닌 것 같은데 비슷하게 소리에 예민하고, 정글짐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다 다치고, 길을 자꾸 잃어버릴까'라는 질문을 하다가 인간에게 오감 말고도 밸런스, 행동지시 등을 담당하는 다양한 감각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쓴 글이었다.


ADHD에게 난독, 어지럼증, 참을성 부족 등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근데 전정신경염도 증상이 똑같다.


초점이 안 맞춰지고, 밸런스가 무너지니까 참을성이 없어지고, 예민해지며, 난독, 구토 등이 유발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인 후보 중 하나는 뇌 내 전전두엽.


다른 하나는 귀 쪽 달팽이관 근처 전정기관의 세 고리관이었다.


어쩌면 둘이 서로를 부추기는 상황일 수도 있었다.  


아직까지 무엇이 더 큰 잘못을 했는지는 모른다.

이전 09화 번거롭더라도 바뀌어야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