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나쁜 것도 잘 잊는다.
어지럽고, 까먹고, 불안한 삶이다.
TV에서 한 졸음운전자가 '정신 차리고 보니 몇십 미터를 왔더라'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도 자주 그렇다.
정신 차려보니 집이고, 회사고, 식당이다.
의학적으로는 내가 하는 행위 하나하나에 큰 집중을 기울이지 않다 보니 그 순간을 해마에 잘 저장해 두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뭐 어쨌든 매 순간 기억의 일부가 삭제되는 것 같다.
어제 뭐했지. 그제 뭐했지. 방금 뭐 하고 있었지. 뭐 그런 말들 말이다.
그러니까 기억력이 엄청 안 좋다.
어느 정도로 안 좋냐면 주변에서 치매 검사를 권유할 정도다.
그러니까 어제 먹은 저녁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알고 지낸 지 5년 가까이 된 친구의 성을 까먹는다거나, 휴가날에 출근을 한다.
기억력 감퇴는 성인기 ADHD의 특징 중 하나다.
-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 뭐지 그.'
-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그것도 기억이 안 나면 어떡하냐'
-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은 '아 왜 또 기억이 안 나지'
이게 단순 건망증이라면 성격이 특이하다는 소리에서 멈추겠지만. 그걸 넘어서면 민폐라는 소리를 자주 듣기도 한다.
특히 업무에 지장을 주게 될 때 그렇다.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까먹고 자꾸 하는 것이다.
예로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 보니 맞춤법을 잘 신경 써야 하는데 항상 같은 종류의 실수를 반복한다.
나의 슈퍼바이저는 이런 내가 질렸는지 이제 잔소리조차 하지 않는다. (해고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다.)
연애에도 문제가 많다. 어디 친구들이랑 놀러 가면 꼭 연락을 하라는 말을 까먹거나, 약속을 잊어서 지각을 한다거나.
그런 증상이 한두 번이 아니니 애인이 나를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기억력 감퇴는 정확히는 '작업기억력'이라는 복잡한 인지적 업무들을 수행하는데 요구되는 일시적인 정보의 저장과 관리를 도와주는 일종의 단기 기억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작업기억력은 일반적으로 수 초 동안 보관되며, 지시사항 기억, 문제 해결, 충동 억제, 주의집중과 같은 다양한 과정에 개입된다.
이 기억력이 좋지 않으니 약속을 잊는 일 외에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샤워하러 가야지', '나가서 물을 사 와야지' 같은 나 자신과의 약속도 잊게 되는 것이다.
근데 덕분에 나쁜 것도 잘 잊는다.
어제 참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해도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나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