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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닉 Oct 11. 2020

나는 페미니스트지만,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다

뉴닉과 뉴니커는 오늘도 편견을 깨는 중

나는 평소에 주로 웃음을 살해한다.


페미니스트, 했을 때 생각나는 단어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있겠지만 스탠드업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맞닥뜨린 단어는 ‘킬 조이’였다. 킬 조이란, 남들이 웃는 농담을 받아주지 않고 옳은 말로 지적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걸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야, 진짜 병신같고 웃기다!”라고 말할 때 옆에서 ‘병신’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장애 혐오를 짚어주며 사람들의 ‘조이(즐거움)’를 목 졸라버리는 걸 뜻한다.



는 ‘킬 조이 페미니스트’다.


우리 아빠 고향은 경남 사천.  우리 가족을 포함한 경상도 사람들은 참 농담을 잘하고 매사에 위트 있는 편이지만, 소위 ‘빻은 말’을 많이 한다. 어쩌면 유머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올바름과는 다른 노선을 지닐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웃긴다는 건 대상을 어느 정도 일반화할 때 가능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개개인을 싸잡아서 한 종류의 평평한 대상으로 묶어버린다는 게 되니까 말이다. 페미니스트임을 잊지 않은 채로 사람들을 웃긴다는 건 그래서, 정말 힘든 일이다. 


웃기는 것도 힘들지만, 재미라는 녀석을 죽이지 않고서 목숨줄을 붙들어 놓는 일도 상당히 고난이도의 노동이다. 경상도식 개그코드를 꽤 폭력적으로 구사하는 친척들은, 만나면 말로 어퍼컷을 날리기 일쑤다. “아이고 우리 안평이 어릴 땐 미스코리아 나갈 줄 알았는데 지금은… 무슨 일이고?” 그럼 바로 나가는 내 일차적 반응은 “지금 뭐라하노?” 다. 이건 그야말로 킬 조이.

*빻았다: 차별적이거나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난다, 인권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뜻을 의미하는 인터넷 용어 (편집자 주).



가끔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물론 후회한다는 건 아니고, 선후관계가 바뀌었다면 참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스탠드업코미디언이었던 나는 뒤늦게 페미니스트가 됐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가끔 코미디에 섞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울 뿐. 여자 유튜버들이 매번 ‘차별하지 마라’고 할 땐 악플이 달리지만, 남자 유튜버가 ‘차별하면 안 돼’라고 하면 ‘좋아요’ 수가 엄청 늘어나는 것처럼, 선후관계가 약간 바뀌기만 해도 환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무대 밖에서도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몇 해 전에 시골에 갔던 날이었다. 큰아빠가 아주 근엄하게 “제사상에 절하면서 소원 열심히 빌어라. 다 이루어주신다.” 하는 거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답하며 엎드렸다. “아이고, 기도한다고 다 들어주면 우리 지금 여기서 절 안 하고 해외여행 가 있겠죠.” 옆에서 절을 하던 언니들은 빵 터져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한참을 다 같이 엎드려 있었다. 급기야 나중에는 큰아빠도 함께 키득거렸다. 힘을 좀 빼고 너스레를 떨며 가부장제 옆구리를 툭툭 쳤더니 웃음이 후드둑 떨어지는 걸 보며, 앞으로 어떤 코미디를 해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조금 얻었던 날이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기 위한 일반화를 최대한 적게 하면서, 혹은 좀 더 올바르게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재미라는 걸 툭! 하고 던져줄 수 있을지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계속해보겠다.

오늘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쉽고 재밌게 전달하며, 편견을 깨는 뉴닉이 더 궁금하다면! 


글쓴 뉴닉 팀 안평


뉴닉에서 에디터로 일합니다. 동북아구술문화연구회에서 스탠드업코미디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연구중인 틈틈이, 글을 씁니다. 독립잡지 「맨손」 등에 소설을 썼고, 한겨레21에서 「뉴스 큐레이터」를 연재합니다. (브런치 주소 brunch.co.kr/@anp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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