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닉 Oct 11. 2020

나는 농부지만, 벌레를 무서워한다

뉴닉과 뉴니커는 오늘도 편견을 깨는 중

시골의 똥 냄새도 싫어한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퇴비를 짊어 나르는 일 역시 힘들어 한다. 이중 하나도 괜찮지 않다. 귀농 초반엔 ‘농부라면 응당 좋아하거나 할 줄 알아야 하는 일들이 왜 여전히 싫고 고될까. 나는 그렇게까지 농사짓기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보다. 어쩌지. 도시로 돌아가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농사를 그만두려던 나를 다시 농촌으로 돌려 세운 건 미니스커트를 입은 농부였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제초기를 휘두르는 그가 낀 헤드폰에서는, 제초기 소리보다 더 큰 락앤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충격으로 얼어 붙었고, 겨우 한 마디가 새어나왔다. 


아 저래도 되는 거구나.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동안 나를 죄어오던 건 고단한 농사일이 아니라, 농부에 대한 이미지 혹은 기대였다는 것을. 왜 내 머릿속의 농부는 한 번도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았을까. 왜 언제나 소박한 감색 옷을 입고, 소쿠리를 들고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농부라 하면 어쩐지 털털하고, 환경 친화적인 일상을 살고, 몸 쓰는 일을 겁내지 않을 것 같은 내 기대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지독하게 애를 먹었다.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부러 무거운 퇴비를 거뜬히 드는 척, 모든 벌레를 나의 작은 친구들이라 생각하는 척, 예민하지 않은 척했다. 내가, 또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는 ‘농부’가 되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고, 그때마다 자책을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락앤롤 음악에 맞춰 고개를 흔들며 제초하는 그를 보고서야 생각했다. 무얼 입고 어떻게 일해야 한다는 직업의 틀은 따로 없다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나를 그 틀에 끼워 맞출 게 아니라 그 틀을 녹여 나에게 꼭 맞게 바꿀 수도 있는 거라고. 무엇이 되든 나를 남겨야 한다고. 겨우 내속의 편견 하나를 깨고서야 나를 이렇게 소개할 수 있게 됐다. “안녕하세요. 거미를 무서워하지만 완두콩이 돈으로 보일 때엔 거미줄도 거침없이 치우는 농사꾼입니다. 어떻게 농사로 돈을 벌까 고민하는 디스크 환자이기도 하고요. 이런 제가 농부답지 않나요?”


직업에 대한 편견은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뉴스에서 안경을 쓴 여성 아나운서가 아직 낯선 것만 보아도 우리의 상상력은 턱없이 얕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구든, 언제 어디에서든, 우리가 원하는 모양대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가진 직업과 맞지 않는 걸까 고민하며 기존의 틀에 어떻게든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우리 같이 그 틀을 녹이거나 부수자고. 그리고 스스로에게 맞는 틀을 다시 짜보자고. 나는 호미와 낫을 챙겨갈 테니, 같이 시작해보자고. 

오늘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쉽고 재밌게 전달하며, 편견을 깨는 뉴닉이 더 궁금하다면! 


글쓴 뉴니커 일용할 양식(@giveme.everyday) 

농사를 짓고, 글을 짓습니다. 1인여성농촌생활집담회 기록 「이런 내가 불편한가요?」 공저로 참여했으며,  「어쩔 수 없이, 오늘도 토마토를 심었고요.」를 연재합니다.

이전 03화 나는 환경운동가이지만, 네일아트를 좋아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