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축구싶냐?》
서울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추억과 의미가 담긴 곳이지 않을까. 모든 길이 통한다는 서울이니까 말이다.
어른이 되기 전,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경기도 양평과 일산에 살던 시절 종종 엄마 손을 붙잡고 서울에 왔었다. 교통편은 불편했지만 엄마는 누나와 내게 언제나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하셨다. 덕분에 롯데월드나 경복궁 같은 관광지부터 서울에 살면 막상 안 가게 되는 세종문화회관, 대학로, 남산 과학관과 도서관까지 여러 번 갈 수 있었다. 지금도 하나하나 생생히 생각나는 기억들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가장 강렬한 서울의 첫 경험은 광화문 교보문고다. 중학생이 되고, 처음 축구팀을 만들었을 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편리하지 않았다. 잠깐만 쓰려고 해도, '띠띠...뚜뚜뚜뚜...' 소리를 내는 모뎀을 돌려야 했고, 설령 접속했다고 한들 '축구 훈련법'과 같은 정보는 없었다. 주장으로 훈련과 포메이션을 직접 짜야했던 나는 언제나 훈련방법을 고민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하루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버지가 신문에서 '축구 훈련서'에 관한 신간 책 소개 기사를 스크랩해주셨다. 다음날 신나서 학교에 기사를 가지고 간 나는 친구들을 꼬셔서 그날 바로 온 동네 서점과 시내 대형 서점을 뒤졌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런 스포츠 전문 서적은 서점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결국 그 책이 필요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서점 '광화문 교보문고'뿐이었다.
팀원 중 누구도 엄마 없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본 적이 없던 우리에게 서울 지하철이나 서울행 버스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 서울에 살던 친구들에게는 익숙하고 별 것 아닐지 모르지만, 경기도 일산에서도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탄현동에 신설된 호곡중학교 1학년들에게는 그 과정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는 가야만 했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책이 반드시 필요했다.
부모님 없이 우리 힘으로 가고 싶었다. 부모님들께는 비밀로 하고, 우선 교통비를 구했다. 그리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던 동네 형을 통해 광화문 가는 버스 번호와 타는 곳, 지하철을 통한 이동 방법을 물었다. 광역버스나 지하철을 타본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비용과 탑승방법을 모두 알아둬야 했다. 형은 귀찮아했지만, 지하철에서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는 것과 환승을 하려면 '환승합니다!'라고 소리쳐야 한다는 것 따위의 잘못된 정보로 우리를 놀리면서 자신의 재미를 챙겼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바보가 아니었지만.
드디어 결전의 토요일. 학교가 끝나고* 광역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지하철은 너무 복잡했고, 혹시나 길을 잃을까 두려웠다. 개발이 안 되어있던 구파발의 논밭을 지나 2시간 정도 갔을까? 버스의 반환점이 되는 광화문 역 정류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뉴스에서만 보던 기업들의 높은 사무실 건물과 초록색 번호판에 서울이 적힌 수많은 자동차들, 경복궁을 지키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보였다. 마침내 우리 힘만으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온 것이다.
길가는 분들을 붙잡고 물어물어 지하에 있는 교보문고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가장 친절해 보이는 30~40대 여성 직원분께 스크랩한 기사를 보여드리고, 스포츠 섹션으로 함께 이동해 책을 찾았다. 한참을 찾았고, 마침내 책꽂이 구석에서 신문으로 봤던 그 '축구 훈련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그 당시 가격으로 2만 원이 넘었으니 꽤나 비싸고 두꺼웠던 번역서였다. 지금 보면 유튜브나 인터넷에 더 자세하게 나와있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그 책이 금단의 비법서와 같았다. 다들 신나서 책을 넘겨보며 당장 내일부터 어떤 훈련을 할지 계획을 세웠다.
교보문고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탔던 곳 반대에서 타면 되는 동네 버스와 달리, 길이 복잡한 광화문에서 집 가는 버스 정류소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한참 동안 기다리는 우리를 태워주지 않고, 무시하듯 지나가버리는 버스 기사님들에게 분노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상한 점을 발견했고, 간신히 정류장을 찾아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린 우리는 모두 곯아떨어졌고, 다시 2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다시 펼쳐보니 책 내용은 매우 알찼다. 평소라면 학교가 끝나면 책은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그날 이후로 밤늦게까지 책을 읽으며 우리 팀에 맞는 포지션부터 수비 훈련, 공격 훈련 등을 공부했다. 다음 날에는 배운 것을 가지고, 점시시간과 방과 후에 아이들과 모여 훈련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지는 것이 익숙했던 우리는 그동안 한 번도 못 이겼던 다른 동네 축구팀들을 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때는 드라마처럼 고양 시장배 축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아마도 금단의 축구 훈련서 덕분이지 않았을까.
지금도 가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스포츠 섹션을 찾는다. 이제는 축구 훈련 서적은 물론이고, 각 팀을 분석한 전문적인 책부터 축구선수 자서전이나 축구 전문 잡지도 많이 보인다.
그래도 그때 우리가 봤던 금단의 비법서만 한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난 아마 평생 동안, 광화문 교보문고를 특별한 첫 경험의 장소로 기억할 것이다.
아, 참고로 그때 우리의 단골 미용실은 '블루클럽'이었다.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