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은 청춘이다.
안도 타다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말이 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청춘이다.”
그 말이 가끔 떠오른다. 특히 나이가 살짝 의식될 때, 그리고 이유 모를 자존심이 목구멍 위로 기어오를 때 말이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아침부터 쌓인 일들과 생각들을 털어내고 싶어 10km를 달렸다. 숨이 가빠지고 땀이 흐르는 몸으로 다시 근력 운동까지 20분을 이어갔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내 심장이 활기차게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샤오미 인바디 체중계에 올라섰다.
그 체중계가 나를 보고 말했다.
“청춘이네요.”
뜻밖의 메시지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신체 나이를 숫자로 보는 건 웃어넘길 일일 수도 있지만, 문득 그 한 마디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젊음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살아가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일까?
생각해 보면 청춘이란 참 아이러니한 것이다.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에게 청춘은 결코 고마운 존재가 아니다. 그 시기는 혼란과 불안, 그리고 끝없는 갈증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시험해 보는 시간이다. 청춘 속에 있는 이들은 자신이 그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나중에야 가슴 아리게 기억할 뿐이다. “아, 그때가 청춘이었구나.” 그렇게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뛰고, 운동하고, 땀 흘리는 동안은 어쩌면 그것이 청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체중계는 그걸 간단히 숫자로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청춘은 단지 젊음의 상징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태도와 열정에 대한 메시지가 아닐까?
그래서 믿어보기로 했다. “청춘이네요”라는 그 작은 외침을. 내 안의 자존심이나 나이 듦을 의식하는 대신, 오늘을 청춘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임을 깨닫고 감사하기로 했다.
청춘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뛰고, 더 살아보려는 나의 의지와 마음가짐 속에 존재한다. 그러니 샤오미 인바디가 청춘이라고 말해준 오늘을 그냥 웃으며 받아들이기로 한다. 살아 있는 동안은 청춘이라는 안도 타다오의 말처럼, 나도 오늘을 믿어보려 한다.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청춘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