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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Dec 24. 2022

대학 캠퍼스가 사회적 축복인 이유

대학의 진짜 스승은 오프라인 공간

대학 캠퍼스는 마을입니다. 마을은 밀집하지 않은 형태로 사람들이 모여사는 형태의 공간을 말합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대학을 보면 몇 개의 마을이 모인 큰 마을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미국 유명 종합대학의 캠퍼스는 말 그대로 다운타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학교 내 생활의 편의성 면에서는 한국 종합대학들이 단연 압도적인 수준입니다.



최소단위 경제생활 가능


마을의 개념은 삶에 필요한 것을 일구고 구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는 생산 활동의 장은 아니지만, 의식주 등의 경우는 마음만 먹는다면 교내에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캠퍼스 공간의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여러 요식업 브랜드들이 교내에 자리 잡고 있어서 굳이 학교 밖을 나가지 않고도 식음과 관련된 기호 생활도 즐길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엔 난로를 펑펑 때고, 여름엔 에어컨을 빵빵하게 가동합니다. 


제가 나온 학교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한국외대 글로벌 캠퍼스


생산 활동도 아예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내 근로장학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나름의 용돈벌이도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일의 형태가 굳이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디바이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많으니, 교내 공공근로가 아니더라도, 교내 공간에 머무르며 돈벌이를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학교에서는 빠른 데이터 리소스를 제공하죠. 


대학 공간이 마련한 이 마을 같은 인프라는, 사실 엄청난 비용으로 구축됐습니다. 등록금, 재단으로 출연된 기금,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 재원이죠. 교육부의 대학 지원 예산이 고작 얼마나 된다고 그러느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막대한 리소스를 구입하는 데는 세금 감면 혜택도 제공됩니다. 다른 얘기긴 한데, 사실 대학은 이 때문에 외부인들에게도 공간을 개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재원이 들어간 공간이기 때문에 공공에 대한 개방성은 의무입니다. 



나만의 공간 그 이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을 키우려고


그렇다면 왜 기업가, 자산가들은 재단을 만들고, 국가는 왜 재정을 내어 이만한 돈을 대학에 쓰는 걸까요? 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4년간이나 세상의 마을이 아닌 또 다른 별도의 마을에서 4년을 보낼 수 있도록 했을까요? 


생각건대, 아마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같은 공간에서, 최소 단위의 물리적 의사소통을 익히고, 배움과 실제 세계를 연결하는 훈련을 좀 더 거쳐보라는 배려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사회에서도 이런 기능을 못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저신뢰 사회입니다.  성인이 된 사람들이 우호적으로 공간을 형성하고 뭔가를 공유하는 데 익숙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은 이 사회화의 기능을 다른 나라보다 좀 더 많이 집니다. 물론 이것이 변질돼 학벌주의로 흐르기도 하는 문제는 있습니다만, 그건 나중에 달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스탠퍼드대 캠퍼스 : 이미지 출처 Envato Element


전문계 고등학교나 전문대는 자신의 확실한 기술과 직능으로, 거의 평생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할 일을 일찍 선택하게 되는 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호흡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사회 시스템의 기능적이고 세부적인 부분을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을 길러내는 것이 전문계고, 전문대입니다. 물론 그렇게 양성된 인재들도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사회가 그렇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합대학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자신의 전공을 중심으로 생활이 이뤄지겠지만, 단과대라 불리는 건물을 벗어나 캠퍼스라는 큰 마을을 이렇게 저렇게 돌아다녀볼 기회와 의무는 반드시 생깁니다. 1, 2학년 때는 교양 수업을 들어야 할 때도 있고, 도서관에 들러야 할 때도 있으며 학교 행정을 담당하는 부서를 찾아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학과가 다른 친구를 동아리에서 만나기도 할 것이고, 살아온 궤적이 다른 연인을 만나기도 하겠죠.


이미지 출처 : 고려대학교 홈페이지


이러한 경험은 곧 세상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윤곽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알려줍니다. 물론 학교마다 제공하는 교육서비스의 질에 따라 수준은 조금씩 다르겠으나, 대부분의 종합대학은 이런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은 ‘0’과 ‘1’로 구성된 가상의 공간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훨씬 많은 정보량을 가진 오프라인의 세계에서 더 확실히 겪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 기업들이 양자 컴퓨팅을 왜 연구하겠습니까? 기존 ‘0’과 ‘1’의 2차원 세계가 오프라인의 세계의 의미를 완전히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파워 'I'도 추천하는 신입생 OT


저는 문과 출신이고 소위 ‘아싸’ 중의 아싸였습니다. MBTI는 잘 안 믿지만 INFP이고요. 인프피특 참고로 저는 MBTI 테스트가 국내 대학 교양 심리학에 막 보급될 무렵 대학 1학년을 보냈습니다. 그런 저의 대학 1학년은, 신입생 OT를 거치지 않은 1학년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싫어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바로 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전까지, 한 해 걸러 한 번은 나는 신입생 음주 사망 사고 등에 대한 부모님들의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OT에 가는 대신, 학교에서 나눠준 추천도서 100선에 해당하는 책을 읽거나 영어공부를 하며 전공 공부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저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만 믿었습니다. 물론 책 속엔 길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책 속의 길은 여러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가 OT에 가지 않아서 인생이 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럭저럭 제 적성과 직능을 살려 잘 살고 있습니다. 수입차도 한 대 끕니다. 그냥 만족할 만한 삶입니다. 하지만 OT를 비롯한 단체 활동의 경험이 적은 부분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직무에서 직급이 올라가며, 일보다 사람을 알고, 내 일보다 전체의 과업을 만들어가야 할 때, 주어진 일 외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파동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리엔테이션 한 번에 그런 능력이 생긴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4년의 시간 동안, 그런 기회를 만들어갈 계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숙련된 행사 엔지니어들이 안전을 보장


물론 공황 장애나 임상적 수준 즉 병원에서 진단받은 수준의 밀집, 폐소 공포증이 있는 이들은 가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세계의 문을 여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의 경계 수준 정도에 있는 학생이라면, 그래서 내가 현장에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거나 했을 때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해서 OT 참석을 망설인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행사를 진행하는 업체들이 기술적으로 훌륭한 수준입니다. 특히 적어도 4년제 종합대학의 OT 행사를 주관할 수 있는 기획사, 대행사라면 이런 부분에 대한 안전 매뉴얼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공연 등 사람이 밀집하는 장소에서는 이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첨단 카메라가 있고, 그중에 있는 사람들의 이상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대학 종합평가 순위가 낮아 교육부 지원 등이 부족하고 동문들의 재원 출연 여력이 부족한 학교라면 이런 높은 수준의 기획사를 쓰는 것이 어렵겠지만, 적어도 서울과 수도권, 각 광역시 근거의 종합대학이라면 수준 있는 기획사를 씁니다. 


4년간, 사람마다, 사람의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의 크기와 깊이, 즐거움은 다 다를 겁니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을 경험해본 이들이 겪을 마을의 입체감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겪을 마을의 공간감은 많이 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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