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길바닥에 앉아 몇 시간 동안
나는 나욱이 일을 하는 동안, 그리고 내가 일을 하는 동안 생각했다. 자꾸만 자신이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반신반의하는 나욱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정해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역할은 여자친구인 내 몫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곧장 나욱에게 장문의 뚱뚱한 메시지를 보냈다.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게 맞다는 내용의 장문 메시지였다.
나욱은 내 메시지를 읽고 대답했다.
“나 천천히 생각하고 정리해서 답하고 싶어. 생각 정리되면 답해도 될까?”
“많이 기다려야 할까?”
“오늘 일 끝나면 말할 수 있게 해볼게. 오늘 일이 좀 바쁘다. 미안해.”
나는 항상 남자의 결정을 기다리고, 기다리느라 애태우고, 애가 타서 미련하게 행동한다. 이번의 미련한 행동은 나욱이 일하는 가게 앞에 가서 죽치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는 나욱을 지금 당장 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정신차려보니 나는 나욱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빨간색 패딩과, 검정색 통 넓은 힙합 바지를 입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나욱이 일하는 가게가 있는 역에 내려서 나욱에게 메시지했다.
‘오늘 집 같이 가고 싶어.’
메시지를 남기고 가게 근처 아무 데서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그땐 몸이 추운 것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추운 것보다도 나욱을 기다려야겠다는 목적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같은 자리에 앉아서 줄담배를 피우며 나욱을 기다렸다.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날 나욱은 예정보다 훨씬 늦게 퇴근했다. 그만큼 내가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나욱은 일이 끝나자마자 내게 전화했다.
“미솔아, 나 이제 끝났는데. 오늘 가게에 이벤트가 있는 날이어서 사장님이 다같이 회식을 하자고 하셔. 그래서 말하려 했던 것 내일 말해도 될까?”
나는 편한 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가게 밖으로 나오는 나욱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후다닥 역으로 달려갔다. 그러면서 나욱에게 말했다.
“보고 싶다.”
나욱은 대답했다.
“그거 알아? 나도 보고 싶어.”
이 말을 하면서 나욱은 웃었다. 나는 따라 웃으면서 어쩌면 나욱에게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강한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지하철을 기다렸다. 뒤늦게 메시지를 본 나욱이 답장했다.
“나 지금 봤어. 혹시 기다리고 있어?”
“음, 그렇긴 한데. 괜찮아.”
나는 아, 이러면 또 네가 미안해할 텐데. 하며 너스레 떨었다. 나욱은 얼마나 기다렸냐고 물었다. 나는 별로 안기다렸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지. 솔직하게 말해줘.”
“그냥 근처에서 공부한 거야. 내가 혼자 기다렸는데, 뭐. 미리 말 안하고.”
“연락 못 봐서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일하고 있었는데. 잘 놀고 내일 일어나면 얘기해.”
“알겠어. 집 조심히 가.”
나는 지하철을 탔다. 뭔가 드라마 같은 우연이 벌어져서 나와 나욱이 만나게 되는 일은 없었다. 그때 나욱에게 다시 메시지가 왔다.
“너 가게 앞에서 기다렸다면서. 왜 말 안 했어.”
나욱과 함께 일하는 직원이 창문 밖으로 날 보고 나욱에게 말한 것이었다. 눈썰미도 좋지, 한 번 본 나를 어떻게 알아봤을까.
나는 나욱에게 말했다.
“내가 기다린 일이 네가 내일 할 말에 영향 안 미쳤음 좋겠다.”
나는 그때 왠지 나욱이 화가 났다고 느꼈다.
엉망인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나욱에게 메시지가 왔다.
“잘 잤어?”
“통화 가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