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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솔 Jul 10. 2024

15화. 홍콩에 있는 여자, 일본에 있는 남자

각자의 여행을 하면서 연애하기

  이담을 잊지 못했기 때문에 나욱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게 맞을지 고민하던 차였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나욱은 내게 꽃 선물을 하나 했다. 나는 처음 받아보는 꽃 선물에 나욱과의 관계를 지속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전부 증발해버리는 마법을 경험했다. 정말, 정말, 너무 좋았다.      


  꽃 선물을 받은 날, 나는 나욱의 손을 꼭 잡고 내가 사는 동네를 함께 걸었다. 날씨가 상당히 추웠는데도 맞잡은 나욱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전혀 춥지 않았다.     


  그 만 오천 원짜리 꽃 선물 하나에, 이대로 이담 대신 나욱을 깊이 사랑할 것도 같았다.     


  나와 나욱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각자 일주일 일정의 여행을 떠났다. 나는 홍콩, 나욱은 일본이었다. 나와 나욱은 매일 밤마다 페이스톡을 하거나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여행기를 나눴다. 나욱은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셀카를 자주 보내줬다. 그는 셀카를 정말 잘 찍었다. 나는 그의 감각적인 셀카를 받으며 정말 진심으로 감탄했고, 새삼 다시 반했다. 여행은 따로 했지만, 마치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이 기간 나와 나욱은 연인으로서 해야만 하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나는 꽃 선물을 받은 이후로 나욱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고, 여행하는 동안 나욱을 향한 마음이 더 커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욱을 좋아하면 할수록, 나욱이 날 떠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다. 그런 불안감을 가지는 건 분명 내 문제도 있겠지만, 나욱에게 자꾸만 어떤 낌새가 보였기 때문도 있었다.   

  

  먼저 나욱은 여행 가기 전, 나욱을 보고 싶어하고 보러 가는 나에게 ‘너는 날 너무 좋아해.’라고 말했다. 너무 좋아하면 좋은 것 아닌가? 하지만 나욱은 그 말을 하면서 덧붙였다. 미슐랭 쓰리 스타도 365일 삼시 세끼 먹으면 질리지 않을까, 라고. 나는 동생에게 이 말을 하면서 나욱이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꺼림칙하든 말든, 나욱을 향한 내 마음은 커져만 가는데. 그래서 나는 여행 중 나욱에게 나욱이 먼저 발견하면 날 떠나버릴 만한 상처, 약점 같은 것들을 스스로 먼저 말하곤 했다. 나욱은 내가 그러는 이유가 나욱이 나를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서임을 잘 알았다.      


  또 나욱은 내게 이상형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이것을 말했다.     


  ‘일단 나보다 키가 작아야 해.’     


  나는 나욱보다 1cm 컸다. 이상형 조건 첫 번째에서부터 탈락한 것이다. 그걸 들은 나는 또 물었다. 그럼 넌 나를 왜 좋아해? 나욱은 자신이 나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내가 자기를 좋아해서라고 했다. 그럼 나욱을 좋아하고, 나욱보다 키가 작은 다른 년이 나타나면?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나욱의 입에서 ‘그럼 그 애한테 갈 거야.’라는 말이 나올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나욱은 어느 순간부터 입버릇처럼 말했다.


  “넌 날 너무 좋아해. 좋아해도 너무 좋아해.”     


  나욱은 여행 이전에도 그 말을 한 적이 있다. 심지어 자기 직장 동료에게도 내 얘기를 하며 그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지 말았어야 했나? 널 그렇게까지 많이 좋아하진 않거든? 하며 화 냈어야 했을까?     


  여자에게는 육감이 있다는 말이 있다. 나도 여자라서 그런가,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새 내 육감이 나욱의 그 말들에서 어떤 낌새를 눈치챘다.      


  둘 다 여행을 마치고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날이었다. 전날 나는 상욱이 아주 많이 보고 싶다는 일기를 썼다. 만나서 할 일들에 대한 기대도 잔뜩 적었다.     


  나와 나욱은 카페에서 만났다. 각자 여행한 나라에서 사온 선물들을 교환하고, 서로의 노트북에 어떤 정보가 담겨있는지, 그 정보들은 어떤 관심사를 이루는지 공유했다. 나는 나욱에게 내가 쓰는 글들과 홍콩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내 예술가적인 면모들을 어필했다. 또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못다 한 말들도 했다.     


  하지만 그날도 나는 나욱에게서 낌새를 느꼈다. 그때 나는 펑퍼짐한 체크무늬 셔츠에 검정색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나욱은 내 옷차림을 두고 그 치마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말했다. 헐렁한 힙합 청바지가 제 취향이라고도 덧붙였다. 그것은 제 연인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자신의 판타지를 말한 게 아니다. 지적하듯 아니꼽게 말했다. 마치 너는 날 만족시킬 수 없어.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오후 두 시에 시작한 데이트가 저녁쯤 됐을 때였다. 결국 나욱이 토해내듯 말했다.     


  “나, 너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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