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느냐, 마느냐. 찬반토론.
“나, 너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썩 놀라지 않았다. 올 것이 왔구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상을 했더라도 막상 실제로 벌어지니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헤어져야지. 라고 대답했다. 말을 마치고 옷을 여미고 있는데 나욱이 말했다.
“근데 나 헤어지기 싫어.”
나는 나욱의 그 말을 듣고 나욱을 바라봤다. 눈물이 주륵 흘렀다. 나욱에게 상처받아서라기보단 또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강요한 모양새가 된 게 스스로 후회되어 그랬다.
충격을 받으면 기억이 사라진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 나도 그랬다. 그 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욱이 내 집까지 나를 데려다줬고, 내가 집에 가면서 ‘우리 헤어지더라도 친구하자.’라고 말했던 것 밖에는. 그날 나는 집에 와서 일기를 썼다. 함께 헤쳐나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고. 그 길을 걷는 동안 지치지 말아야 할 텐데 가슴이 시큰하다고. 나는 나욱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어도, 일단 헤어지기는 싫다고 했으니 그 관계를 어떻게 해서든 이어나가고 싶었다. 가늘고 약한 관계라면 노력해서 단단하고 견고한 관계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날 밤 나욱의 꿈을 꿨다.
“오늘 꿈에 나욱이 나왔지 뭐야. 네 생각하다 자서 그런가. 어제 봤는데 또 보고 싶다.”
나욱이 대답했다.
“꿈에서 뭐했어?”
“꿈에서 다른 건 다 기억 안 나는데, 나욱이 손잡고 웃었던 건 기억난다.”
내가 말했고, 다시 나욱이 대답했다.
“항상 손 잡고 웃어줄게.”
결론부터 말하면, 나욱의 이 이 말은 지키지 않을 말이었다.
어느 날은 나욱과 독립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나욱에게 ‘ㅋㅋ’을 붙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랑 같이 사는 건 어때?”
하지만 나욱은 동거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가슴이 다시 답답해진다고 했다. 당황한 나는 동거는 정말 나중 이야기고, 지금은 나도 생각 없다고 허둥댔다. 그런 나를 보며 나욱은 물었다.
“내가 자꾸 이러는 데도 나랑 계속하고 싶어?”
나는 응, 계속하고 싶어. 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나욱은 오랫동안 침묵하다 말했다.
“그만할까?”
결국 그 날은 헤어지진 않았지만, 이 관계는 정말 위태하구나를 서로 깨닫고 통화를 마쳤다.
다음 날 아침, 나욱이 메시지로 말했다.
“미솔아, 오늘 퇴근하고 전화해도 될까?”
나는 나욱이 왜인지 나에게 이별 통보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혹시 헤어지자고 할 거야? 그거라면 안 받을래. 만나서 얘기해.”
나욱이 대답했다.
“그런 의도로 전화하자고 한 건 아니었어. 전화하고 싶어서 했던 말이었는데, 그렇게 느끼게 해서 미안해.”
“아…….”
나는 방금의 내 메시지가 나욱이 나에게서 한 발짝 더 멀어지게끔 한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안 그래도 나욱은 자꾸만 자신이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이 관계를 지속하는 게 맞는지 고민스럽다고 말하는데. 나의 행동은 자꾸 나욱을 부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랑은 너무 어렵고 똥 같았다.
나는 나욱이 일을 하는 동안, 그리고 내가 일을 하는 동안 생각했다. 나욱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정해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역할은 여자친구인 내 몫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곧장 나욱에게 장문의 뚱뚱한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