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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솔 Jul 03. 2024

13화. 처음 뵙겠습니다만, 오늘 집에 들어가지 마요

어딘가 잘못된 플러팅인 걸 아직 모르고서는

  한 해를 정리했다. 그해 여름은 형교를 짝사랑하다가 엄청난 민폐를 끼쳤고, 그해 가을은 태산을 몰아세우다가 최악의 끝을 맺었고, 그해 겨울은 이담과 장난에 가까운 탐색을 하다가 흐지부지 애매한 사이를 만들었다. 세 번의 사건은 모두 나에게 큰 상처였고 나의 자존감을 아주 많이 갉아놓은 썩을 로맨스였다. 그래서 새해 목표를 세웠다.          


  술, 담배, 남자 끊기. 3대 백해무익.     


  하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말에 걸맞게 나는 새해가 되자마자 이 목표를 잊고 만다. 이담을 끊지 못하고, 그를 향한 집착이 시작된 것이다.


  이담과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데이트를 끝으로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했지만, 사실 나는 그 이후로도 이담을 향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 이담이 보고 싶어서 메시지를 보냈고, 이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하루는 이담에게 ‘우다다’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메시지는 우리 사이는 대체 뭐냐,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 사이는 대체 뭐냐, 하며 태산을 몰아세우던 일과 완전히 같은 행동을 이담에게 한 것이다. 심지어 이성을 잃고 ‘우다다’ 메시지를 보낼 때는 할 말이 많고 명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담의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을 듣고 나자 ‘그래서 내가 하려던 말이 뭐지?’ 싶었다. 나도 내 마음이 뭔지 모른 채, 이담을 괴롭히는 꼴이었다. 이담이랑은 간절하게 태산처럼 되고 싶지 않았으나, 정확히 같은 절차를 밟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꿈에는 이담이 자주 나왔다. 기억나는 꿈 중 하나는 내가 이담의 경기를 맘졸이며 지켜보고 나서, 이담의 승리를 내 승리인 것처럼 축하하는 꿈이었다. 이 꿈을 꾸고 나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이 무렵 내 머릿속에서 제법 큰 지분을 차지하던 진로에 대한 걱정인지, 이담과의 관계에 대한 슬픔인지 분간되지 않는 슬픔이었다. 이성은 이담의 거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성 빼고 몸의 모든 부분이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추한 모습으로 우리 관계는 뭐냐며 ‘우다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이담을 처음 만났다. 그동안 이담이 당시 유행하던 독감을 앓았기 때문에 미치도록 오래 기다린 채였다. 나와 이담은 대화하기 위해서 만나긴 했으나, 뭘 말해야 하는지는 둘 다 몰랐던 것 같다. 이담은 학업이 남았고, 선수 생활 등 중요한 시기를 겪고 있으니 나와 사귈 수 없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결론을 내렸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는가. 이담은 나를 만나서 말했다.     


  “저 누나 정말 좋아했어요. 하루종일 누나 생각 밖에 안났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물었다.     


  “지금은?”     


  이담은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려 하죠.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대답 대신 이담의 볼에 너무 입을 맞추고 싶었다. 이담의 볼에 입을 맞추고서 말했다.     


  “너랑 다 벗고 끌어안고 싶어.”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담은 말했다. 사귀지도 않는데 이렇게 만날 때마다 자는 거 안 돼요. 나는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이담은 그날 내게 사적인 연락은 이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슬펐지만 나는 그 약속을 해야만 했다.     


  한편, 나는 나욱이라는 동갑 남자애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하트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욱은 중학교 시절 친구의 고등학교 친구였다. 나욱은 나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나를 이상형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 나의 이상형에도 나욱이 해당했다. 나와 나욱은 친구의 소개를 통해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맞팔했고, 스토리에 하트를 주고받았다. 문장 없이도 뭔가를 전달하던 하트는 서서히 디엠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나는 나욱이 아르바이트하던 음식점에 초대를 받았다. 그걸 계기로 나는 나욱과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못됐지만, 처음에 나는 이담을 밀어내기 위해 나욱과 연락했다. 하지만 나욱은 알면 알수록 사랑할 만한, 사랑하기에 기쁠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드림하우스에 대해 자세히 상상하고, 그 드림하우스에 놓고 싶은 소파에 대해 사진까지 찾아 보내며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관이 있었고, 개성이 있었다. 나는 나욱의 그런 면에서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그는 매일 아침 잘 잤냐는 인사를 해왔고, 하루가 끝날 무렵엔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물어 왔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눈 감을 때까지 외로운 나에게 그 인사들은 큰 힘이 되었다.      


  그러다 나욱과 나는 첫 번째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데이트로 나욱이 일하는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얼굴을 마주하고 제대로 대화를 나누어보자, 나와 나욱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게다가 나와 나욱은 서로를 아주 재밌고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빨리 가까워졌다. 그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또 막차가 끊기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결국 두 경기도민은 새벽까지 서울에 남아 막차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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