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역시 운동만이 구원이고 의지다
차이고 나서 한 일
“나는 널 안 사랑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이게 호감인지 사랑인지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판단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그만하는 게 맞아.”
나는 나욱의 말을 듣고 화를 냈다. 그럼 이제까지 사랑한다느니, 어쩐다느니 한 말은 다 거짓말이고 연기였어?
나욱은 그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더는 그런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연애에 쓰는 시간과 돈도 아깝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은 연애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랬다. 나는 나욱의 단호한 태도에 붙잡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냥 화가 무지하게 날 뿐이었다.
이후로 운동에 매진했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운동하다 보니, 운동만이 구원이고 의지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운동하는 곳에는 이담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담을 계속 마주치면서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이담과 예전과 같은 관계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담이 다시 한번 날 안아줬으면 했고, 이담과 스파링이라도 한번 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노리면 노릴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담 대용으로 나욱을 만나려 했다가 상처받으니까 다시 이담에게 껄떡대려 하다니. 이러니 내가 벌 받은 거지, 하는 생각. 이담이 보고 싶은지, 나욱이 보고 싶은지 정확히 모른 채 이따금 혼자서 ‘보고싶다….’ 라고 읊조리곤 했다. 스스로가 우스웠지만 일단 마음은 그랬다.
하루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이담에게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두 개가 있었는데, 그중 비공개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내 계정을 ‘언팔로우’ 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담은 내 인스타그램에 누른 ‘좋아요’까지 전부 취소했다. 의미 없이 그냥 한 것 아니야?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세대들의 상당수가 인스타그램 언팔로우를 ‘절교’나 ‘손절’의 의미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은 굉장한 큰일이었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년이 되어도 호감이 남아있으면 사귀자고 했었는데, 그래서 내년 1월 5일에 약속을 잡아 뒀는데. 벌써 인스타그램 계정을 언팔로우 할 정도로 내게 감정이 식은 것인가? 우습지만 그때의 난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일어난 직후부터 자기 직전까지 이담이 날 언팔로우한 것에 대해 신경 썼다.
며칠 뒤, 나는 속을 끓이다가 결국 이담에게 메시지로 ‘날 왜 언팔로우 했는지’를 물었다. 이담은 내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내가 나욱과 헤어지고 이담을 신경 쓰느라 한 행동들이 이담에게는 부담이었더랬다. 그럼 넌 날 손절한 거냐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랬다면 나머지 한 계정도 언팔했을 거라고. 그럼 ‘좋아요 취소’는 왜 한 거냐 물으니 의미 없이 했다고 했다. 이날 대화를 하면서, 이담과 실낱처럼 남은 관계마저 끝나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 내년 1월 5일에 만나기로 했던 거, 만날 거야?’
이담이 확실히 만나겠다고 말해줬으면 했다. 그러나 이담은 말했다.
‘생각해볼게요.’
‘그럼 그냥 그것도 없던 일로 하자.’
원하는 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내가 먼저 가장 원하지 않는 결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