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보여줘, 뽀뽀해줘
*우드득*
이담이 암바를 걸고 있는 내 팔에서 실타래가 연속적으로 끊어지는 소리가 났고, 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내 첫마디는 이랬다.
“너 나한테 감정 있니?”
감정은 내가 있으면서. 이담은 팔을 붙잡고 끙끙거리는 내게 연신 괜찮아요, 누나? 라고 물었다.
그렇다. 이담과 스파링을 하다가 내 팔의 인대가 전부 끊어져 버린 것이다.
끊어진 인대는 완전 파열이라 수술이 불가피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인대 파열 사건은 내 모든 사회활동을 차단했다. 일단 운동을 할 수 없었고, 하필이면 왼손잡이인 내 왼팔이 다쳐서 아르바이트 하던 미술학원에서 한 달이라는 강제 휴가를 받았다. 깁스 때문에 글씨도 쓸 수 없었고,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이담은 미안하다는 의미로 밥을 한 번 사기로 했다. 이것 때문에 이담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이담과 통화하면서는 왜 내 팔을 꺾었느니 하며 탓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담과 평범히 대화했다. 나욱을 만나기 전처럼, 서로 좋아하던 때처럼.
“나, 너랑 이렇게 대화할 기회가 계속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아.”
“…그럼 누나는 아직도 저 좋아하시는 거예요?”
“…어떤 것 같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이후로도 나는 팔을 핑계로 이담에게 소소한 연락을 했다. 이담은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 이런 연락을 무시하거나 성의 없이 답장하지는 않았지만, 의무 이상의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심지어 이담은 내가 너무 징징거리는 게 귀찮았던 건지, 이런 말도 했다.
“이미 미안하다고 엄청 많이 말한 거 같은데 왜 계속 미안하다고 해야 해요….”
시간이 흘러 이담이 밥을 사기로 한 날이 되었다. 만나서 이담이 사는 밥을 먹고 카페에 가기로 했다. 나는 아닌 걸 알면서도 이게 이담과의 데이트인 것처럼 자꾸만 기대가 됐다. 정작 이담은 이제 내 팔을 분지른 건에 대해서는 이걸로 마무리라고 생각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연락도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이담을 만났다.
이담을 만나서는 자꾸만 어색한 상황이 벌어졌다. 가기로 했던 가게는 인터넷 정보와는 다르게 문을 닫았고, 이담과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근처 가게에서 밥을 먹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담아, 내가 뽀뽀해달라면 어쩌려고 누나가 말하는 건 다 해주겠다는 말을 했어?”
“누나가 보여달라면 보여줘야죠. 근데 어떻게 꽃을 보여줘요?”
“아니, 꽃 보여달라는 거 말고. 뽀뽀….”
“아….”
나는 이담에게 우리 집 근처에 벚꽃이 예쁘게 핀 곳이 있는데 그걸 보러 가자고 말했다. 이담은 흔쾌히 좋다고 말했다. 내가 이담을 데려간 곳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뒤편의 공원이었다. 그 공원에는 정자가 있었는데, 정자 근처의 나무는 전부 벚나무라 바람이 불 때마다 꽃비가 떨어졌다. 나와 이담은 그 정자에 앉았다.
정자에 앉아 잠깐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보다가, 이담의 턱을 살짝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이담은 누나, 이건 뽀뽀가 아니잖아요. 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