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담뱃불을 붙일 수 있어야 해.
‘우리 내년 1월 5일에 만나기로 했던 거, 만날 거야?’
이담이 확실히 만나겠다고 말해줬으면 했다. 그러나 이담은 말했다.
‘생각해볼게요.’
‘그럼 그냥 만나지 말자.’
원하는 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내가 먼저 가장 원하지 않는 결정을 했다.
이담에게 추하게 집착하다가 결국 그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그래서 우울하다는 핑계로 내리 잠만 자는 날이 길어졌다. 그 무렵 인생 처음으로 인터넷 만남을 했다. 소개팅 어플에서 매칭되어, 6개월 동안을 간간이 연락하던 군인과 드디어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 군인 남자애의 이름은 유진이다. 유진과 만나기로 한 날은 그 애의 생일이자 휴가 첫날이었다. 유진을 만나고 간단히 생일 축하를 한 뒤, 술집에 갔다. 유진은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와 함께 성격도 시원시원한 남자애였다. 그 덕분에 술자리에서의 대화가 즐거웠다. 유진과는 이틀을 만났는데, 이틀 중 하루는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 데려가 운동을 시켰다.
이틀 동안의 유진은 남자친구는 아니었지만, 마치 남자친구처럼 듬직했다. 유진은 이담과 예전 같은 관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나를 잘 위로해주었고, 유진과 있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내 손으로 담뱃불을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후폭풍이 심했다. 유진이 나머지 휴가를 즐기러 떠나고, 나 혼자 담뱃불을 붙이려니까 너무 외로워서 눈물이 났다. 이 얘기를 친한 언니들에게 하자, 일본에 함께 갔던 현정 언니가 명언을 남겼다.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혼자 담뱃불 붙일 힘 정도는 남겨 두어야 한다고.
이게 다 내가 너무 한가한 탓이라는 결론을 냈다. 그래서 국비 지원 컴퓨터 학원에 컴퓨터 활용 자격증반을 등록했다. 자격증반이 종강하고 나서는 한국 실용 글쓰기, 한국어 능력 시험, 토익,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을 차례대로 준비하려 마음먹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이담을 향한 미련과 그리움을 지우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컴퓨터 자격증반 개강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금요일이었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이담과 스파링을 하고 있었다.
*우드득*
이담이 암바를 걸고 있는 내 팔에서 실타래가 연속적으로 끊어지는 소리가 났고, 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내 첫마디는 이랬다.
“너 나한테 감정 있니?”
감정은 내가 있으면서. 이담은 팔을 붙잡고 끙끙거리는 내게 연신 괜찮아요, 누나? 라고 물었다.
그렇다. 이담과 스파링을 하다가 내 팔의 인대가 전부 끊어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