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첫 만남에는 우산을 같이 썼지만
이제는 우산을 따로 쓰길 바라는 남자
때는 PMS 기간이었고, 나는 호르몬의 노예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담의 생각이 평소보다 더 짙었다. 그래서 이제 연락하지 말자는 약속을 깨고 뭐해?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담은 체육관이에요. 라고 했다. 나는 이담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이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서 그 답장을 읽지 않고 있었다. 체육관이다 라는 말에 어떤 답을 해야할 지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이담에게 한 개의 메시지가 더 와 있었다.
‘왜요?’
나는 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후 늦게 저녁이 다 되어서 답장을 보냈다.
‘그냥 별 건 아니고, 같이 노래방 가고 싶었어.’
‘근데 왜 답을 안 했어요.’
‘체육관인데 방해될까 봐 그랬지.’
자신도 모르는 더 복합적인 이유가 있어서 답장하지 않은 거지만, 이담에게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담을 만나서 어쩌고 싶은 걸까.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죽이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나도 그냥 애매한 사이에서의 스킨쉽을 즐기고 싶은 걸까. 이담과 연애를 하는 미래가 더 이상 그려지지 않음에도 나는 왜 이담을 놓지 못하는 걸까.
‘내가 연락하지 말래놓고 먼저 연락한 거 웃기지. 난 스스로 웃긴데, 넌 아무렇지 않아보이게 대답하네.’
‘저번에도 했잖아요...ㅋㅋ 조금 웃기긴 해요.’
‘그랬지...ㅋㅋ 그래도 쿨하다. 나 같았으면 화도 좀 났을 거 같은데.’
‘살짝 어이 없었어요.’
‘나도 이상할 거 알았는데, 너무 하고 싶었어. 황당했으면 미안.’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어쨌든 이담은 ‘다음에 노래방 같이 가요.’라고 했다. 그 기회를 놓칠까봐 바로 그 주 주말에 노래방 약속을 잡았다.
이담과 만나는 날에는 비가 왔다. 이담과 처음 키스를 나눴던 날에도 비가 왔는데, 그 생각이 나서 기분이 조금 들떠 있었다. 이담이 이번에도 아주 큰 우산을, 그래서 둘이 써도 충분히 남는 크기의 우산을 가져와 줄까. 그런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이담은 우산을 같이 쓰려는 나를 마다했다. 불편한데 각자 쓰면 안 돼요? 라고 했다. 난 이담의 여자친구도 뭣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산 같이 쓰기를 요구할 권리가 없었다. 결국 각자 우산을 쓰고 노래방에 갔고, 노래를 불렀다. 이담은 노래를 잘했다.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하니, 그래요? 고마워요. 하는 게 귀여웠다. 내 눈에 이담은 뭘 해도 귀여웠다. 턱도 예뻤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이담과 또 모텔촌에 갔다.
이담이 말했다. 누나, 누나랑 나이 비슷한 남자도 만나봐요. 나는 이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지난 겨울에는 4살 차이는 차이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는데. 그냥 이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과 나 자신이 비참하다는 생각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