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지나간 인연을 잠시 붙잡아보았다가 실패했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이담에게 쌍욕을 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어느 날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나욱의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욱에게 연락을 했다.
‘나욱아 안녕.’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해.’
‘괜찮으면 답장 줘.’
10시 반 쯤이었는데, 나는 이 디엠을 보내고 바로 잠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전날 11시 10분 쯤 나욱의 답장이 와 있었다.
‘안녕.’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
나는 대답했다.
‘내 연애 실패 요인이 뭐였을까?’
‘이걸 왜 나한테 물어보나 싶을 수 있겠지만’
‘너도 내 실패에 포함이고 물어볼 사람이 너밖에 없네.’
‘그러니까’
‘왜 나에 대한 너의 호감이 사랑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나 이걸 묻고 싶어.’
나욱이 대답했다.
‘첫 만남에 너무 성급하게 행동한 거. 좀 더 시간을 두고 이게 호감인지 사랑인지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거.’
‘미솔아. 우리가 만나서 했던 거는 연애라고 하기엔 힘든 거 같아. 연애가 아니라 섹스만 했지. 물론 넌 그렇게 생각 안 할 수 있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 근데 우리가 만났을 때 했던 거는 단지 서로의 욕구를 해소하는 행위밖에 없었는데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나도 우리가 한 것을 너한테 말할 때 연애라고 해야 할지 인간관계라 해야 할지 고민했어. 섹스만 해서라기보다는 너무 짧고 갑작스럽게 끝나서. 너는 나와 한 게 욕구 해소뿐이었다고 느꼈다면 할 말 없지만, 나는 마음 없이는 욕구도 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너와 내가 생각이 달랐고, 그래서 내가 너무 욕구에만 치중했다고 받아들였다면 미안해. 섹스하기 싫다고 하던 네가 아직도 떠올라서 마음이 안 좋네. 너도 나와 같은 사람일 거라고 속단했던 거 같아. 인제 와서 변명해보자면 내가 인간관계 자체에 대해서 이기적이고 미숙했어. 그리고 난 사랑은 약속이라고 생각해. 마음을 확인해서 이 마음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거. 그래서 난 널 사랑했어.’
‘호감이 사랑까지 이어지지 못한 건 내가 성급해서였다고 볼 수 있겠네.’
‘그게 다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나도 성급했고 무책임했어.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나의 문제가 더 크지. 미안해.’
‘아냐. 누구의 문제가 더 크다 잘잘못 따지고 싶지 않아.’
‘처음엔 네가 밉기도 했는데 지금은 너한테 좋았던 게 더 많이 기억나.’
‘원할 때에 좋은 사람 만나.’
‘고마워 미솔아. 그렇게 말해줘서.’
오전에 대화를 마치고 나는 숙제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갔다. 일을 시작하기 전, 잠깐 SNS를 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메시지 창을 켰는데, 나욱이 뭔가를 입력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나 들여다보았다.
‘계속 생각나서 말해야 할 거 같아서 다시 보내. 우리가 만났을 때 한 게 욕구 해소뿐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 사이사이 했던 대화들, 기억들이 좋았어. 네 말처럼 마음 없는 욕구는 없으니까 만나는 동안 고마웠어.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네. 고마웠어 미솔아.’
나는 이 메시지를 보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무래도 아까 나욱이 우리가 만나서 한 행동은 욕구 해소뿐이었다고 한 말이 나도 모르게 상처가 된 모양이었다. 나욱은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나는 대답했다.
‘이런 대화 그때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만 드네.’
‘했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네. 하지만 아마 그때라면 달라지진 않았을 거 같아. 그래도 지금이라도 대화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슬픈 기분이네. 진심으로 네가 잘 지내길 바라.’
‘고마워. 나도 네가 잘 지내길 바라.’
나욱과는 영원히 대화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