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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솔 Aug 18. 2024

26화. 참 첫사랑다운 사랑이다

이 사랑을 첫사랑으로 정했다. 성장이 있는 사랑이었으니까.

  ‘모솔씩씩’을 쓰는 일이 갑자기 힘들어지는 일이 있었다. 내가 내 연애사에 관심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내 연애사에 대해 가진 감상은 걸레같은 연애사. 딱 그 정도 감상이었다. 다 걸레 같았다. 나도, 남자들도.     


  이담에게 너무 연락을 하고 싶었다. 딱히 뭐라 할 말도 없지만, 그냥 연락하는 사이이고 싶었다. 그 애가 어떤 계획과 꿈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고 그걸 응원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왜 이럴까. 나는 이담이 미운 것이 아니었나? 나는 그 애랑 만나면 오래 침묵하고 몹시 어색하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어색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한 것이 아니라 어색하지 않을 때까지 이담과 친해져 본 적이 없는 거다.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낀 것도 걔와 만나면 스킨쉽을 했기 때문일 거다. 좋아한다고 느끼는 상대가 날 안아주고 키스해주는데 그게 안 행복할 리가. 이담과의 마무리를 형편없이 지은 게 후회가 됐다.   

  

  그래서 연락을 했다. 거의 수시로 이담의 생각을 했지만, 그날 밤은 특히 이담이 생각이 나는 날 밤이었다.     


  ‘이담아’  

   

  ‘네?’

  ‘왜요...?’


  ‘끝을 거지같이 낸 게 미안해서 메시지 해.’

  ‘내가 너한테 나쁜 기억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괜찮아요. 저도 확실하게 얘기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아냐, 너랑 나는 그런 얘기할 수 있을 만큼 편한 사이였던 적이 없잖아.’

  ‘대화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해보려 하지도 않았고.’     


  이담과는 만났다. 이담과 나는 인간적인,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만나면 스킨쉽하기 바빴고, 무엇보다 내가 이담과 그런 대화를 해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담을 만나서 한 대화는, 내가 이담을 만난지 반년이 넘게 지나고 나서야 한 대화는 비로소 인간 유미솔 대 인간 이담이었다. 남자를 꼬셔 제 결핍을 채우려는 유미솔이 표적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 유미솔이 하는 말로 대화했다. 드디어.    

 

  이담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좋은 기억이 됐니? 이담이 그렇다고 말했다. 이담도 내가 좋았던 기억을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회 이긴 것 축하해준 거나, 비 오는 날 정자에서 첫 키스했던 것 말이다. 이담과 많은 얘기를 했다. 과거를 추억하기도 하고 피드백하기도 했다. 후회, 감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이담이 말했다.

    

  “누나, 안아줄까요?”     


  “왜?”     


  “그냥. 누나 슬퍼 보여서요.”    

 

  이담이 날 안았고 내가 이담을 안았다. 이담이 숨 쉴 때마다 가슴인지 배인지가 부풀었다 줄었다 하는 걸 느끼며 안고 있었다. 끌어안은 채 또 대화했다.     


  이담아, 정말 좋아했어. 저도요, 정말 좋아했어요. 이담아,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저도요, 정말 좋은 추억이었어요.     


  사랑한다고 누구한테 말해 본 적 있어? 있어요. 누구한테? 전 여자친구들이요. 부럽다, 걔네들도. 너도. 왜요? 사랑한다고 말할 사람이 있어서. 나도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남자친구 생길 거예요. 근데 나 이런 생각을 했어. 결혼 적령기에 급하게 만난 남자랑 짧게 연애하고 결혼해서 평생 가짜 사랑을 하며 불행하게 살 것 같다고. 부정해줘, 이담아. 아니예요, 누나. 누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평생 행복하게 살 거예요. 나는 안겨서 울었다. 소리 없이, 들키지 않게.    

  

  이담이 내 걱정을 부정해줬고,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그래서 내 연애사는 걸레 같은 연애사가 아닌 다시 평범한 연애 실패담이 되었다. 성공 전에 으레 있을 법한 실패담. 심지어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의 평범한 실패담. 그리고 다시 ‘모솔씩씩’을 쓰는 일이 즐거워졌다.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 마지막으로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하고 바라보다가, 잘 지내. 라고 말했다. 이담이 누나도 잘 지내요, 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서로 좋아하지 않으니, 절대 연락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히 만나서 인사하는 것 말고는 이제 없다고.      


  이담과 마지막으로 포옹하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잘 가. 안녕히 가세요. 하염없이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담이 건물 사이로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집까지 걷기도 하면서까지 모르다가 집에서 일기를 쓰면서 알았다. 아, 안보일 때까지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 사람이야말로 남겨진 거구나. 확실히 남겨진 거구나. 나는 이 관계에서 남겨졌구나. 눈물이 나왔다. 드디어 남겨졌구나, 해서.      


  그날 이담과의 만남은 전혀 천박하거나 끈질기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답고 끝맺음이 있었다. 이담은 내가 오해한 것과 다르게 훨씬 깔끔하고 인간다운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 다행이다.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다.      


  난 아마 이담을 사랑했던 일을 첫사랑이라 부르게 될 것 같다. 참 첫사랑다운 사랑이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나를 자라게 했다는 점도.     


  나는 이번 남겨짐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종종 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이 관계를 떠나겠다. 나는 나아가는 사람이니까. 다음 사랑을 만나면 난 분명 다를 테다.   

   

  나는 모솔이지만 씩씩하다 완(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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