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솔 May 31. 2024

1화. 몽골에서 만난 완벽한 남친감

좋아하는 마음은 내가 자신이 있든 없든 시작한다.

  해외 교류 프로그램으로 몽골에 갔다. 몽골에서 보낸 첫날 밤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형교와 연인이 되는 나를 상상한다.’ 그리고 나의 짝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푸른 하늘과 맞닿아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들판을 누비는 동물들, 밤이면 쏟아지는 별, 비가 내리면 떠오르는 무지개. 몽골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 몽골을 함께 간 또래 중 눈에 띄던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형교였고, 객관적으로 잘생긴 외모에 리더쉽이 대단하고 유머러스함을 갖춘 남자애였다.   


  넓은 들판에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는 소를 보며 한 여자애가 그랬다. 쟤네들 도망 안 갈까? 형교가 대답했다. 뭔가 가스라이팅을 해뒀겠지. 나는 그 농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농담을 구사하며 형교가 지은 쾌한 미소도, 자신감 있고 듣기 좋은 목소리도 계속 곱씹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일방적인 사랑이 시작되었다. 근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농담을 듣기 전부터 애초에 형교에게 반해 있었던 것 같다. 형교는 잘생겼고, 발표를 잘했고, 한 조의 조장을 맡아 팀원들을 세심히 잘 이끌었으니까.     


  몽골에서 돌아왔지만, 형교에 대한 생각으로 속이 시끄러웠다. 정작 형교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몽골에서는 쭈뼛댔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타로를 무진장 많이 봤다. 형교를 만날 수는 없으니 타로집 점장님을 만나러 갔다. 긍정적인 카드가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가 어찌 되든 용기를 내라는 점장님의 말에는 정말 큰 감명을 받았다. 형교와 다시 만나는 날을 위해, 1일 1식을 하며 몇 주 만에 4키로를 뺐다. 또 형교에게 한 마디라도 더 걸기 위해 히피펌으로 보글거리던 머리를 20만 원이나 주고 매직했다. 몽골에서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아이들은 금세 모임을 가졌고, 형교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모임에서 형교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모임이 거의 끝나고, 버스 막차를 타기 위해 나는 자리를 떠야 했다. 용기를 내어 형교에게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형교는 그래, 데려다줘야지! 하며 모임을 전부 이끌고(...) 길을 나섰다. 둘이 가고 싶었는데, 이런 젠장. 싶었다. 그래도 나는 악착같이 형교 옆에서 걸으며 물었다. “형교야. 나 머리 파마한 게 나아, 편 게 나아?” 내가 준비한 궁극기, 『여우의 속삭임』이었다. 형교는 아주 오래 고민하며 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파마 왜 풀었어? 라고 물었다. 나는 이거 물어보려고! 라고 대답했다.      


  “누구누구에게 물어봤어?”

  “네가 처음이야.”

  형교가 아, 내가 처음이야? 하면서 당황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남자들은 다 긴 생머리 좋아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너는? 너도 그래?” 내가 물었다.

  형교는 음, 하는 소리를 아주 오래 내고는 생머리가 나아! 라고 외쳤다. 나는 대답으로 그럼 나 머리 매직하길 잘했네. 라고 말했다.      


  그다음에도 나는 걷는 동안 끊임없이 나에 대한 것을 형교에게 말하고, 형교에 대한 것을 들었다. 여름밤의 선선함과 형교와의 상호작용이 어우러져 미칠 듯이 간질간질, 두근두근했다. 버스에 올라타면서 형교를 뒤돌아봤는데, 형교와 눈이 마주쳤다. 손을 흔들어주는 형교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의 『여우의 속삭임』이 제대로 먹혔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와 형교 사이에 뭔가가 생겼을 거라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형교에게 카톡이 와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이전 01화 0화. 나는 20대 ‘모솔’이지만, 퍽 씩씩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