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솔 May 31. 2024

2화. 질리도록 매달리고, 질리도록 매달려 본다.

매달리기가 질릴 때까지 매달리기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형교에게 온 카톡은 없었다. 온종일 기다려 보았지만 폰은 울리지 않았다. 동생은 형교에게 절대 먼저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지금과 같은 극 초반은 당겨야 할 때 같았다. 그래서 형교에게 먼저 카톡을 보냈다.  


  ‘금요일에 홍대에서 놀지 않을래?’    


  먼저 카톡이 오지 않은 건 이해한다. 하지만 답장도 오지 않는 건 너무하다. 형교는 24시간도 넘게 카톡 답장을 하지 않았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피가 말랐다. 내가 간질간질하다고 착각했던 분위기가 형교에게는 불편했을 걸 생각하니 너무 창피했다. 내 끊임없는 플러팅과 에스트로겐 개방에 형교가 정신을 못 차리는 줄 알았더니, 정신을 못 차린 건 나였다. 형교가 미웠다. 놀자는 제안에 싫으면 싫어. 라고 말하면 될 것을 24시간도 넘게 기다리게 하다니. 이틀쯤 기다려서 받은 답장은 이랬다. 금요일에는 선약이 있어. 나는 쿨한 척, 곧 있을 모임에서 보자!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하루는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었다. 심심해서 형교가 사는 동네로 이유 없이 놀러 갔다. 가기 전에 형교에게 오늘 뭐 하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자기는 오늘 아르바이트가 있댔다. 어깨를 으쓱했다. 형교에게는 부담스러우면 어쩔… 하며 계속 찝쩍댔다. 너무 부담스러울까 걱정도 됐지만, 도통 데이트 신청을 받아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형교가 딱 잘라 거절하지 않는 이상 계속 매달릴 셈이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데 부담스러우면 네가 확실히 말해. 하는 식이었다.  


  몇 번의 데이트 신청을 더 했고, 형교는 그때마다 갖은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몇 번째 거절인지 세기를 포기했을 때, 코로나는 아닌 여름감기에 걸렸다. 우울했다. 나는 형교를 좋아하는데, 형교는 나에게 호감이 없는 이유가 뭔지 너무 궁금했다. 속상하기도 했다. 믿기지 않았다. 우울해서 그런가, 여름감기 때문에 목이 아파서 그런가. 늘 졸리고 몸에 힘이 없었다. 목을 포기하고 싶은 고통을 느끼며 생각했다. 형교는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이 없을까? 보고 싶다. 열렬히 보고 싶다. 그런데 나는 형교의 뭣도 아니라서 그러면 안 된다. 언제는 속상해서 눈물이 다 났다. 형교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에둘러 거절하고 있는데, 나는 그걸 외면하며 계속 말 걸고 메시지하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속상했다.


  마지막 사후 모임 날이 다가오면서 공식적으로 형교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다가왔다. 짝사랑은 몇 번의 좌절을 겪으면 집착으로 진화한다. ‘멋진 형교를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 형교를 향한 분노’로 번질 때쯤, 나의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관계는 원래 일방적일 수 없어서 어려운 것이니, 감정조절을 잘해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나서 형교에게 일방적으로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고 많이 노력했다. 차분히 일기를 쓰며 생각했다. 형교가 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분노, 집착, 슬픔 같은 감정들을 잘 해소하고 소화해야 한다. 마지막 사후 모임 전날 다짐했다. 형교에게 교태 부리지도, 아양 떨지도 않고 그냥 인사해야겠다고. 바라는 것 없이.     


  마지막 사후 모임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블로그에 일기를 썼다.  


  ‘역시 남자는 자기가 관심 있는 여자를 헷갈리게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인스타 피드에 ‘좋아요’를 다 누른다거나, 먼저 간다고 하면 작별 인사를 하려고 전력 질주한다거나.’     


  마지막 사후 모임을 하면서 확실해졌다. 내가 형교를 좋아하는 것처럼 형교도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나랑도 친한 동갑내기 여자애였는데, 그 여자애를 대하는 형교의 행동이 딱 나 같아서 알 수 있었다. 마저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블로그에 일기를 썼다.     


  ‘저는 요즘 친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관심 있는 남자애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한테 관심이 없어 보여서 정리 중이라고도 덧붙입니다. 어떤 때에는 담담하게 진짜 정리 중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요, 어떤 때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화제를 돌리기도 해요. 이렇게 누군가한테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전혀 소진될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슬퍼요… 슬픕니다. 슬프고요, 슬픕니다. 내 마음이 아닌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뿐인데요. 엄청 슬픕니다. 엄청엄청엄청엄청엄청 슬퍼요.     


  나는 왜 그 애에게 별 인상을 주지 못했던 걸까요… 변화가 절실합니다. 이 감정을 다 소비 해야 할 만큼, 그러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요. 아주아주 큰 변화요 너무 커서 몇 개월은 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큰 변화요 큰 자극이요 큰 문제이자 사건이요 큰 큰 아주 아주 큰 큰 큰 아주아주 커다란 변화요.’    


  가령, 식스팩이 있는 남자와 술집 데이트를 하는 것 말이다.

이전 02화 1화. 몽골에서 만난 완벽한 남친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