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가 나왔다.
조용한 소란이 발 구르는 한옥 카페
놋그릇에 담겨 나온 딸기 빙수는 예뻤다.
소복한 눈무덤 위에 붉은 꽃들이 가득
피어 있다.
붉은 꽃으로 뒤덮인 설산 같은
빙수의 모습에 너와 나는 먹기 아까워했다.
네가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빙수 예쁘네,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나?
너는 그렇게 말하면서 붉은 딸기 빙수를 한 입 푹
떠먹었다.
한 번 써볼게. 하고 대답한 나는 시를 먹으면서
빙수를 썼다.
글씨에서 달달한 퓨레 맛이 났다.
너는 연신 빙수가 예쁘다는 말을 반복했다.
네가 무언가를 그리 예뻐할 수 있는 남자였다는 데
조금 놀라며 나는 말도 안 되는 시를 계속 썼다.
네가 떠먹는 빙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라고 쓰자마자 이건 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와 나의 멈춤 없는,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듯한,
어둡기까지 한 숟가락질에 빙수는 점점 바닥이 드러났다.
붉은 꽃은 피를 흘리면서 눈 속으로 녹아들어
이제 빙수의 빛깔은 애련해졌다.
나는 이 빙수처럼 녹아버리고 싶다고
이 빙수처럼 소조하고도 화려하게 녹아버리고 싶다고
너에게 말하자 너는 그윽한 미소를 피웠다.
짙푸르다고 생각했다
사진: Unsplash의Nataliya Melnych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