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불행을 한 잔의 백차에
비유하는 태연한 정신으로
시를 쓰는 오후
마음이 끔찍이 고독할 땐
절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친구의 조언을 생각하는 오후
그런데 어쩌나?
나는 이미 한 남자를 안았는걸
그를 안았지만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
세상은 왜 망하지 않았을까
설마 나의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진짜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자학도 자애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태
푸른 달이 뜬 밤 고요히 내려온 그가
두 손으로 천천히
옷섶을 열자
그 안쪽에서 은은한 풀벌레 소리 풍겨나왔다
나는 왜 풀벌레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무엇을 이루기 위해,
그의 옷섶 속에서 은은히 울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됐을까
어쩌면 백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나왔는지도 모른다
백 차 한 잔에 비유되는 불행은 어쩌면 우울과는 구별되는
향긋한 비(非)행복
오늘도 푸른 달이 뜰 거라는 소식이다
나는 그가 달빛의 침상에서 나에게만 가르쳐준
노래를 흥얼거리며
행복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행복은
풀벌레 울음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앓으면서 섧게 앓으면서
당신의 가슴팍에 뺨을 비비고 싶어요
나중에 태어날 옥색 피부를 가진 자식에게도
노래를 가르쳐 줄 거라고 하던데.
어쩌면 그 사람도
한 점의 옥색 피부를 가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