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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Sep 25. 2024

아늑한 노랫말


불행을 한 잔의 백차에

비유하는 태연한 정신으로

시를 쓰는 오후


마음이 끔찍이 고독할 땐

절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친구의 조언을 생각하는 오후


그런데 어쩌나?

나는 이미 한 남자를 안았는걸

그를 안았지만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

세상은 왜 망하지 않았을까


설마 나의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진짜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자학도 자애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태


푸른 달이 뜬 밤 고요히 내려온 그가

두 손으로 천천히

옷섶을 열자

그 안쪽에서 은은한 풀벌레 소리 풍겨나왔다


나는 왜 풀벌레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무엇을 이루기 위해,

그의 옷섶 속에서 은은히 울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됐을까

어쩌면 백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나왔는지도 모른다

백 차 한 잔에 비유되는 불행은 어쩌면 우울과는 구별되는

향긋한 비(非)행복


오늘도 푸른 달이 뜰 거라는 소식이다

나는 그가 달빛의 침상에서 나에게만 가르쳐준

노래를 흥얼거리며

행복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행복은

풀벌레 울음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앓으면서 섧게 앓으면서

당신의 가슴팍에 뺨을 비비고 싶어요


나중에 태어날 옥색 피부를 가진 자식에게도

노래를 가르쳐 줄 거라고 하던데.

어쩌면 그 사람도

한 점의 옥색 피부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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