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매 Aug 27. 2023

상실

단편소설

     

 너는 여름만 되면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에 너는 떠났다. 나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이별의 통보조차 남기지 않은 너의 무책임에 열이 오른 것도 잠시 나는 네가 이별의 통보를 전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나는 기다렸고 너는 돌아왔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고 너는 그저 잠시 여행을 다녀온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돌아왔으니 됐어. 내 것이 아닌 대사가 내 것인 목소리로 나온 순간 너는 가벼이 웃었고 나는 강한 부정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나를 떠난 여름과 가을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캐묻지 않기로 했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고 나 자신에게 세뇌 아닌 세뇌를 시도하며 너를 대하는 나의 방식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너는 속박을 견디지 못하는 기질이니 나의 욕심을 죽일 필요가 있었다. 나의 욕심을 그릇된 것이라고 스스로 믿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래서 믿었다. 너를 떠나지 못하게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그릇된 것이며 그건 너를 구속하는 이기심이라고. 너와 나 사이에는 다시 없을 평화가 찾아왔다.   

  

 다정한 품을 나눈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왔다. 너는 다시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나는 너에게 왜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나에게서 멀어졌을 뿐, 냉담해진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나의 마음에 스미는 너의 그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의 미소는 부드럽고 쓸쓸했다. 봄의 향기가 코를 마비시키는 그런 날에 너는 정신을 놓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봄의 향기를 차단하지 못하도록 창문을 계속 열어두었다. 집안에 꽃을 몇 송이 두고 싶다고 말한 너를 생각해 내가 구해 온 유채꽃. 너의 책상 위에 유채꽃 화병이 놓였던 기간은 짧았지만 너의 만족한 얼굴에 나는 기뻤다.     


 너의 세계에 근접하고 싶은 충동에서 나는 극단적인 절식을 취미 삼기 시작했고 얼마 후엔 너처럼 마른 몸을 얻을 수 있었다. 빈혈과 극심한 식곤증과 함께. 소화 작용이 시작되는 동시에 마법처럼 찾아오는 졸음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몸이 보내는 불건강의 신호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춘곤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는데, 졸음으로 인한 그 몽롱한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소화의 신호와도 같은 졸음이 사뿐히 나에게 방문하면 나는 은근한 환대의 미소를 지으며 졸음을 맞이했다. 너는 어느 날 나에게 곧 죽을 생각인 것이냐고 물었다. 너의 묻는 얼굴이 사뭇 진지해 나는 네가 장난을 치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너를 닮고 싶어 극단적인 절식을 감행했노라고 고백했고, 너에게 멍청이라고 매도되었다. 너는 내가 마르는 것이 싫어? 아니면 내가 죽는 것이 싫은 거니? 하고 내가 묻자 너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너의 대답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극단적인 절식을 그만두었고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너는 나의 체중 회복에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원래의 나로 돌아와서 반갑다던가 아니면 이렇게 신속히 체중을 회복한 것이 놀랍다던가 지나가는 말로 가벼이 할 수 있는 한마디도 너의 목소리로 들을 순 없었고 다만,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네가 툭 던졌다.

 

 “너는 나와 같아질 수 없어.”     


 나는 너의 직설적인 한마디에 잠시 말을 잃었지만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반박할 수 없는 지당한 사실이라 결국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와 같아질 수 없다. 너처럼 건강하지 않게 마른 몸으로는 하루도 원활하게 활동할 수 없고 졸음에 지배될 뿐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극심한 졸음의 방문에도 내가 싫증 내지 않았던 건, 단 하나의 이유, 내가 너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체중을 회복하고 나서, 그러니까 너의 세계로부터 다시 멀어지고 나서 나는 자연스럽게 식곤증의 마법으로부터 풀려났다. 너는 지독하게 많이 잤다. 가끔 나는 네가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닌가 걱정됐다.     


 내가 너를 흔들어 깨우면 너는 신경질을 냈다. 그러면 나는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가 의식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도,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고개를 쳐든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봄밤은 애수였다. 나도 가끔은 싱숭생숭해져 잠을 설쳤다. 너의 불면을 닮지 못한 건강한 두 눈꺼풀이 감기지 못하는 그 밤들에, 내가 본 것은 너의 정열적인 뒷모습이었다. 너는 무언가 정열적으로 적어 내려갔다. 나는 나의 숨소리가 너에게 가닿지 못하도록 숨소리를 죽이고 너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불면으로 인한 괴로움을 쏟아내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내 눈이 목격한 그 불꽃이 그저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기엔 너의 모습은 어딘가, 필사적이었다.     


 나는 너에게서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며 천천히 잠이 들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안정되었다. 새벽의 집필에 몰두하는 너에게서는 늘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텁텁한 연기마저도 나의 기분을 안정시키는 묘한 효과로 작용했다. 너의 고독 너의 열정이 연출하는 그 절박하고도 어딘가 퇴폐한 장면이 나의 밤을 통째로 삼키는 날이 그리 빈번했던 건 아니지만,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았다. 너의 재능이 빛나는 밤. 너의 어두운 기억들과 현재의 정체 모를 불안이 너에게 쓰라고 명령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너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너는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에 몰입한 너는 외부의 소리가 전부 차단된 상태라 나는 숨소리를 죽일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너의 책상 위에서 피가 묻은 휴지를 발견하고는 했다.      


 코피까지 흘려가며 쓰는 것에 매진하던 너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그리운 기억이다. 나도 가끔 밤을 새워 글을 쓰고는 했지만, 결코 너와 같아질 수는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재능이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기분이 달가울 수는 없었다. 너처럼 특별한 사람이 가까이 있으니 비참할 필요가 없는 순간에도 기어코 비참했다. 너의 열정을 사랑했지만, 너에 대한 동경이 깊어질수록 나의 불가능이 느껴져 씁쓸했다.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가. 아니 모든 인간은 자기보다 뛰어난 인간을 질투할 수밖에 없는 저주에 걸린 것일까. 그게 인간의 본능인 걸까. 가장 그리운 너의 모습을 기억하며 여전히 질투하고 씁쓸한 나를 발견하고 얼마나 내가 싫었는지!


 내가 그래서 너를 잃어버렸나? 너의 특별함을 온전히 사랑할 수가 없어서.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내가 온전한 인간이라는 믿음에 빠져 살았다. 나는 타인의 마음을 나의 문장으로 사로잡은 경험이 꽤 있었고, 내가 어느 정도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타인을 질투하는 부류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했지만 그게 내가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믿고 있는 나를 깨뜨려준 것은 너였다. 너는 조금도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나는 너로 인해 내 안에 있는 다른 나를 자각했고 처음으로 인간의 질투라는 감정을 배웠다. 그러나 나는 한순간도 내색하지 않았다. 나의 한심스러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도 했고, 나의 머릿속이 아닌 나의 눈동자 속의 너를 대하는 순간에 질투라는 감정은, 그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네가 나에게 처음 가르쳐준 것이 질투라는 감정만은 아니었다. 너에게서 나는 연민을 배웠다. 질투도 연민도 알지 못했던 과거의 나는 얼마나 온전하지 못한 인간이었나. 이젠 질투의 감정도 알고 감히 연민의 감정을 품을 수도 있게 됐는데, 나는 왜 아직도 온전하지 못한 기분인 걸까. 지금은 가을의 초입이다. 너는 올해 여름에도 나를 버렸다. 초여름의 어느 푸른 저녁에 너는 비가 내릴 것 같다며 창문을 닫았다. 언제나 바깥을 향해 열려있던 창문이 굳게 닫혔다. 나는 닫힌 창문이 싫지만은 않았다. 늘 닫힐 줄 모르던 창문이 물론 세상에 대한 너의 막연한 기대와 호의를 의미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너의 진실과는 무관하게 나는 가끔 걱정됐다. 추락하면 지독한 부상을 면치 못할 높이의 창가.      


 네가 너의 자신 안으로 침잠한 표정으로 말없이 창가에 서서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비어 보였다고 할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너는 추락의 유혹과 소리 없이 싸우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위험스러운 유혹에 저항하기 위해 일부러 아래를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항상 저무는 하늘에 고정되어 있던 너의 시선. 너를 바라보는 마음이 섣부른 슬픔에 취한 건 아니었지만, 아래를 보지 않는 너의 모습이 내 가슴에 이상하게 오래 박혔다. 닫힌 창문 너머로 저문 하늘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에 잠긴 듯한 너에게 나는, 여름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너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확실히 네 것이 아닌 낯선 향수 냄새를 맡았다.


 “너는 내가 질렸어?”     


 너의 무표정한 눈빛이 이상하게 상처가 됐다. 괜한 질문을 던졌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너는 천천히 입을 열고 결코, 잊히지 않을 한마디를 툭 뱉었다. 불행이 아니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그런 인간에게 행복이 오면 큰일이 나. 아마 즉사할걸? 협심증으로. 너의 얼굴은 어느새 미소가 떠올라 있었지만 그 말이 농담이라고 차마 착각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너는 괜찮다는 듯이 아니, 미안하다는 듯이 씩 웃음을 지었다. 그날 밤부터 비가 내렸다.     


 사나흘 간의 비. 비가 그치고 너는 떠났다. 비가 너의 출발을 막고 있던 사나흘 동안 나는 너에게 많은 말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너의 몸에 스며든 낯선 향수 냄새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었지만. 나를 이번 여름에 떠나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저지르고 다닐 생각인지 추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너에게 말하지 못했다. 가을의 냄새가 바람에 수줍게 실려 오는 날에 나는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천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노을이 지는 하늘은 아름다웠다. 뛰는 사람들도 있었고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도 보았다. 나는 걸으면서 너에게 나는 무엇인지 하는 생각에 잠겼다. 물론 생각할수록 막막해지기만 했다.     


 겨울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너를 무작정 기다리며 나는 ‘아무래도’를 반복한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아무래도 너 때문에 내가 불행해질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너를 기다릴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나의 연민은 너에겐 장난감에 지나지 않겠지만 나는 어째선지 이 가소로운 연민을 버릴 수 없다. 너를 잃어버린 계절과 너를 잃어버릴 계절 사이에서 나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길을 걷고 있다. 이만 쓰겠다. 오늘 밤엔 정말 잠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