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전면점화, 무수한 점으로 찍어낸 우주적 연대
대학 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지구과학' 수업의 교수님은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은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조별과제로 성적을 매기시곤 했는데 그중 최고 난이도 중 하나는 '별의 일주운동'을 찍어오는 것.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저를 포함한 착실하고 가녀린(?), 뼛속까지 문과생이었던 여학우 3명이 그 과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의 산은 꽤 추울 거다' 하는 한 마디와 함께 낡은 필름 카메라 하나를 휙- 던져 주시고는, 아아- 님은 갔습니다. 셋 다 카메라를 만져본 적도 없었어요. 일주운동이라는 말은 난생처음 들어보고요. 그렇다고 다시 교수님 방으로 들어가 방법을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왜 책상을 맨날 발로 차는 줄 아니? 사람은 발로 찰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하시는 교수님의 친절한 듯 살벌한 농담(?)을 하하- 하며 받아칠 넉살이 우리에겐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는 몇 날 며칠을 산속을 헤매고 찜질방을 전전하며 별을 사냥하러 다녔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수동식 필름 카메라뿐이었기에, 빛 한 점 없는 어두컴컴한 산속에서 10분에 1번씩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컵라면과 믹스 커피로 추위와 허기를 달랬죠.
그렇지만 힘든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별들이 이동하는 걸 숨죽여 지켜보는 건 사실 꽤 멋진 일이거든요. 마치 진공의 상태에 들어온 것 같은 어둠의 감각 속에 있노라면, 밤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았던가 놀라기도 하고 저 작고 아스라질 듯한 별들이 일개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행성과 별들 그리고 '나'라는 존재도, 결국은 모두 무한한 우주의 질서와 규칙 아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달까요.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에서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은비령이라는 어느 고개에서 주인공인 '나'는 사랑하지만 이어질 수 없는 여인과 하룻밤 묵게 됩니다. 그날 밤 별을 관측하러 이곳에 왔다는 한 남자가 다가와 함께 밤 산책을 가자고 하죠. 쏟아질 듯 펼쳐진 별들을 앞에 두고 그 남자는 별과 사람의 생애를 비교하며 '윤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별에게 별의 시간이 있듯이 인간에게도 인간의 시간이라는 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성이 자기가 지나간 자리를 다시 돌아오는 공전 주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 일도 그런 질서와 정해진 주기를 가지고 '2천5백만 년마다 반복되는 윤회의 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2천5백만 년이 지나면 그때 우리는 윤회에 윤회를 거듭하다 다시 지금과 똑같이 이렇게 여기에 모여 우리 곁으로 온 별을 쳐다보며 또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겁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길에서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을 다 다시 만나게 되고, 겪었던 일을 다 다시 겪게 되고 또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을 다시 겪게 되는 거죠."
지금 바라보고 있는 별을 2천5백만 년이라는 까마득한 옛날에도 보고 있었던 나,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 뒤에도 바라보고 있을 나..
2천5백만 년이라는 우주적 질서에 따라 마치 별들처럼 반복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금 내 곁의 얼굴들은 어쩌면 아주 오래전 우리가 이미 한 번쯤 사랑했고 미워했으며 그리워했던 얼굴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시감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먼 훗날 다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존재들이고요.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그림을, 엄밀히 말하자면 어떤 그림의 '제목'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며 추상미술의 선구자라 불리는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입니다. 그는 이 제목으로 연작 시리즈를 그려내기도 했지요.
넘실넘실 청색 물결이 밀려옵니다. 분명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파르르 진동하며 움직이는 듯한 율동감. 여기는 바다나 하늘, 혹은 그 너머 어딘가일까요? 작품 가까이 다가갈수록 보이는 건 점, 그리고 점, 무수히 많은 점입니다. 푸른 점들이 빼곡히 그리고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화면을 뒤덮고 있지요.
화면이 그저 점과 선으로만 가득 차있을 뿐인데 출렁이는 파도에 부서지는 물방울처럼 보이기도 하고, 별이 콕콕 박힌 우수 넘치는 밤하늘 같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그의 절친한 벗이었던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유심초가 부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노랫말로도 기억되겠고요.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詩 <저녁에>
화백 김환기는 캔버스에 점을 찍고 이를 감싸는 작은 네모를 그리고, 다시 그 옆에 점을 찍고 네모를 그리기를 반복합니다. 약 가로 2m, 세로 3m 정도의 대형 작품이다 보니 하루 작업 시간은 기본 10시간이었고, 그림을 눕혀서 같은 자세로 작업한 탓에 목디스크를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생하면서까지 그가 점을 찍고 또 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김환기의 일기 중 일부
김환기의 고향은 전남 신안. 그는 태어나고 자랐던 신안 앞바다의 푸른빛, 밝게 빛나던 둥근달, 바다와 하늘 사이로 날아가는 새들을 늘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동경, 파리, 뉴욕을 거치며 타국에서 보내는 날들이 많았죠.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고국을 향했기에, 그의 붓은 추억 속 형과 색을 고스란히 그림에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어릴 적 눈 앞에 펼쳐진 바다의 색을 닮은 청색, '환기 블루(blue)'가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시기에는 그 그리움들을 쥐어짜내듯 점으로 방울방울 찍어내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전면점화' 작품들을 세상에 내어 놓게 됩니다.
그는 화폭에 담긴 이 10만 개의 점들은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 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2천5백만 년'이나 지나면 볼 수 있을까 싶은 그 얼굴들과 풍경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점 하나하나에 절절한 심정을 담았습니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외치는 듯한 메아리가 작지만 강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다시 소설 <은비령>으로 돌아가 보자면 이 작품에서 '은비령'은 2천5백만 년 동안 기다려온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안타까운 이별의 장소입니다. 이곳 은비령에서 주인공과 소싯적 함께 공부했던 옛 친구의 사망 후, 세월이 지나 '나'는 죽은 친구의 아내를 우연히 만나고 사랑에 빠집니다. 이 둘은 은비령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현생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2천5백만 년 뒤를 기약합니다.
2천5백만 년이라는 시공을 넘어 저 별들처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선 헤어져야만 했던 두 연인의 모습은 신기하리만치 김환기와 그의 아내 김향안 여사와 오버랩됩니다.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 이화여대를 다니던 지성 넘치는 모던걸은 시인 '이상'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네, 우리가 아는 그 <오감도>, <날개> 등을 쓴 이상 말입니다! 1936년 이 둘은 결혼을 하고, 이상은 결혼 4개월 만에 문학적 성장을 위해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안타깝게도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그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그의 임종을 지켜보며 그의 마지막 말이라는 '멜론이 먹고 싶소'를 듣고 전해준 이도, 그의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온 이도 바로 변동림이었습니다.
변동림은 곧 무명의 화가 김환기를 소개받게 되지만, 그때 이미 그는 딸 셋을 둔 이혼남이었고 변동림 또한 사별을 겪었기에 이들의 사랑은 쉽게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변동림의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었기에 소설 <은비령> 속 두 남녀처럼 서로의 곁을 맴돌며 마음만 주고받았죠.
하지만 소설과는 달리 변동림의 확고한 결단을 통해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되고, 김환기의 호였던 '향안'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아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으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평생을 남편 김환기의 예술활동과 작품세계를 지원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에 자신의 온 생애와 정성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결혼 후 그녀는 김환기의 프랑스 유학길에 함께 하며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미술평론을 공부하였고, 프랑스어를 배워 그의 파리 시대 작품을 소개하는 한편 그가 작품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생계를 돌보았습니다. 김환기의 뉴욕 시대에도 그녀가 곁에 있었고요.
1974년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의 유작과 유품을 돌보았고, 몇 년 뒤 환기재단을 설립해 김환기라는 예술가를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1992년 그녀가 세운 환기미술관은 사설 개인 미술관으로는 국내 최초였다고 합니다.
김환기의 그림들은 지금도 미술 경매 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최고가를 갱신하며 100억대를 호가하는 등 K-옥션 순위권에 항상 들어가 있곤 합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대(大) 화가는 아니었으며, 전면점화, 환기 블루와 같은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들 또한 하루아침에 쌓아진 것이 아닙니다. 그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그의 작품들이 현재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아내 김향안 여사의 역할이 아주 컸지요.
아내이자 동료이자 평생의 헌신적인 파트너였던 김향안 여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소설 속 이야기와 같은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한국의 근현대 예술가 김환기’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사실 그리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몇 년 전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김환기 展에 간 것은 화가나 작품에 대한 감상을 느끼기 위함이 아닌, '왜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10위권 안에 김환기의 그림이 9개나 있는가? 도대체 왜 우리에게 익숙한 '이중섭'의 그림보다 더 비싼가?' 하는 값싼 호기심 때문이었죠.
전시장에서 그의 서울 시대, 동경 시대, 뉴욕 시대 작품들을 거쳐 마침내 거대한 전면점화 앞에 서게 된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그저 '한 사람이 그린 그림'을 넘어, '각각의 우리가 모여 연대하는 거대한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요.
저녁이면 검푸른 색이 되는 고향 바다,
어스름이 내리면 검푸른 색이 되는 뉴욕의 밤하늘.
그 위에 친구들도 그리고,
그리움도 그리고,
슬픔도 그리고, 기쁨도 그리고..
김광섭의 시 속 구절처럼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보는 나"를 경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작품 속 점 하나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저는 그 점 하나하나에서 작가의 기쁨, 환희, 슬픔, 고통, 향수, 사랑, 그리고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점 하나하나는 그렇게 우리 각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한한 우주 속 무한한 별들처럼 나름의 질서와 규칙 아래 반복되고 변주하며 다시 회귀하는 점들의 향연.. 이 우주적 삶 가운데 우리는 모두 매여 있으면서 매여 있지 않고,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이 점들이 그리운 고향일 수도 있겠고, 과거에 맺어지지 못한 가슴 아픈 사랑의 눈물일 수도 있겠지요. 누군가에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먼 미래의 희망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고요.
김환기의 작품을 지금 당장 달려가서 볼 수는 없겠지만, 대신 오늘 밤에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겨보면 좋겠습니다. 2천5백만 년 전에도 반짝였을, 2천5백만 년 뒤에도 반짝일 별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그리운 얼굴들과 빛바랜 추억을 꺼내어 닦아보기도 하고,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도록 오늘의 일상을 담아보기도 하면서요.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